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조롱합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악인이 잘 되고 번성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조롱합니다. 그럼으로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하고도 하나님 앞에서 잘못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말 3:14-15)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v.15)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하나님은 절대로 선하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슬픈일 억울한 일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교만한 자가 악한 자가 더 잘살고 행복하며 불행도 당하지 아니하기에 하나님은 절대로 선하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1번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2번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3번
그러나 이 세상에 악이 있습니다. 4번
1-2-3번은 서로의 상관 관계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명됩니다. 그러나 4번의 등장으로 1-2-3번은 틀린 것이 됩니다. 그럼으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선하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우리의 선하심은 다릅니다. 우리의 선은 상대적입니다. 오늘의 선이 내일의 악이되고 나의 선이 너에게는 악이고 너의 선이 나에게는 악이 됩니다. 우리의 선의 중심은 우리가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선은 절대적 선입니다. 항상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선은 우리의 선과 같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1-2-3번에서 4번으로 세상의 선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부정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세상의 악은 우리에게는 악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선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선과 악으로 하나님의 선을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다시 이렇게 공격합니다. 그래도 세상에는 악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악의 존재는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와 맞지 않다고 합니다.
그럼으로 1번으로 2-3번은 증명되지만 4번으로 1-2-3번은 틀린 것이 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악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악은 절대적 악이 아닙니다.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악을 절대적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사악함이 절대적 악이 아닙니다. 어린아기가 백혈병에 걸려 죽는 것이 절대적 악이 아닙니다. 쓰나미로 수십만명이 죽어도 절대적 악이 아닙니다. 히틀러가 유대인 6백만을 죽여도 절대적 악은 아닙니다.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말합니다. 유대인 6백만을 죽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전범자들의 재판을 보면서 그녀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살인자들이 우리와 똑같다는 악의 평범성을 말합니다.
인간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구조로 인하여 악인이 되거나 선인이 된다고 합니다. 절대적 악이 없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어린 아기가 백혈병에 걸려 죽는 일이 없도록 의학은 발전 합니다. 쓰나미로 수십만명이 죽는 일을 막을 수 있는 경보 제도가 나타날 것입니다. 세상의 악도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에게 끝까지 저항 합니다. 악합니다. 그러기에 어거스틴은 인간의 악은 선의 결핍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에서 타락으로 악하게 나타나지만 선의 결핍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적 선으로 이러한 우리와 세상을 창조 이전으로 회복시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둘째 아담이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 선이십니다.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4번, 세상의 악으로 절대 악이 아닌 것으로 하나님의 절대 선을 부정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1-2-3번으로 선하시며 4번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파괴 할 수 없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변증에 관심이 있으면 화요 성경 공부에 참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