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우리의 생각은 서로 일치 하지 않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생각은 우리의 감정에 근거해서 이성적으로 판단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감정과 이성을 넘어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적은 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우리의 생각과 일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은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당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신다고 합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죽으러 가시겠다고 하면 말리는 것이 정상입니다. 죽을 것을 알면서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v.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죽으려고 가는 스승을 말리는 것은 당연한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예수님으로부터 이러한 질책을 받습니다.

(v.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도 베드로의 간청을 무조건 나쁘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사탄의 방법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다음과 같습니다.

(v.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얻습니다. 진정한 목숨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들이 가장 힘들도 고통스럽게 여기는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에 정답과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십자가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수없이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골고다에서 넘어지실 때 도와준 구네레 시몬과 같이 예수님도 우리의 십자가를 도와 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도와 주시는 십자가에 진정한 기적이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가 있습니다.

주어진 나의 십자가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하루를 감당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