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장 69-75 (죄보다 큰 은혜)

베드로가 3번 예수님을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합니다. 이러한 부인은 절대적 절망에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재판정에서 당하시는 모습은 자신의 고백대로 하나님의 아들도 아닙니다. 죄인에 불과합니다.

소설가 최인호씨가 암에 걸려서 투병 할 때에 하나님에게 기적을 베풀어 달라는 자신의 기도가 잘못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엿장수 자신을 엿판의 엿으로 이렇게 비유합니다.

주님, 이 몸은 목판 속에 놓인 엿가락입니다. 저를 가위로 자르시든 엿치기를 하시든 엿장수이신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우리 주 엿장수의 이름으로 바라나이다. 아멘.

암은 절대적 절망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절망에서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엿장수이고 우리는 엿 가락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아는 것이 행복이고 성공입니다. 이러한 행복과 성공은 차원이 다른 기쁨과 행복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닭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기억나서 울었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왜 울었습니까? 배신으로 인하여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울음에 의미는 예수님은 엿 장수입니다. 자신이 엿가락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알고 있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통곡을 합니다.

죄가 무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큽니다. 죄와 은혜가 상대적 관계라면 은혜가 아닙니다. 죄가 더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죄에 비교해서 절대적 관계이어야만 은혜가 됩니다.

베드로는 배신을 했지만 예수님의 크신 은혜를 느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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