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장 27-31 (뒤틀어진 옹이와 용목)

지난주에 Louisville에 다녀왔기에 글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다시 보냅니다.

Las Vegas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약 2만 명이 이상이 모인 곳에 Stephen Paddock // 스티븐 패덕이라는 백인 남성이 총으로 난사를 했습니다. 59명이 죽고 약 600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사망자는 더 늘어 날 것입니다.

경찰은 그가 왜 이러한 일을 했는지 원인을 동기를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총을 난사한 결과가 59명이 죽고 600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원인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마음에 깊은 옹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옹이는 나무가 자라면서 병이 들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암과 같은 현상입니다.

Home depot에서 나무를 살 때에 살펴보는 것이 옹이입니다. 나무에 옹이가 있으면 그 부분이 쉽게 부러집니다. 옹이기 생기면 못이나 Screw가 박히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에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의 상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 옹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옹이는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마음에 폭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 폭력성을 절제하느냐 절제하지 못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폭력성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폭력성은 불안과 열등감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이러한 것들이 증오와 미움으로 변질되면서 폭력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학자는 히틀러는 자신의 어머니가 유대인 의사에게 성폭행을 당했기에 유대인 6백만을 학살했다고 합니다. 스탈린은 아버지가 알콜 중독으로 약자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 스탈린은 자기보다 강한 자에 대한 증오와 복수로 자국민 수천만을 죽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서로 다르지만 이러한 옹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로마의 군인들이 예수님을 왕이라고 하면서, 주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머리를 때립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39대를 맞습니다. 맞을 때마다 살점과 피가 튀는 채찍으로 맞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상관의 명령에 따라 이러한 폭력을 행합니다. 로마 군인으로 사형수에게 이러한 폭력은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폭력이 정당화 됩니다.

우리도 수많은 이유로 로마의 병사와 같이 당연하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나의 정당방위로, 주어진 현실에 대한 분노와 반발로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언어적 폭력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형제에게 언어적 폭력을 행사하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무시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옹이가 있습니다. 옹이는 나무의 다른 부분보다 훨씬 더 단단합니다. 톱으로 망치로 칼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옹이만을 사용하는 목수가 있습니다. 목수 중에서 최고의 가구를 만드는 목수는 옹이 나무를 사용합니다. 이때에 옹이 나무는 용목이 됩니다.

용목은 용의 무늬가 나무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일반인들은 버리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목공의 장인들은 아무리 비싼 값이라도 돈을 주고 사옵니다. 단단하고 아름다운 무늬 때문입니다. 용목으로 만드는 가구는 절대로 변질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가구는 부르는게 값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입니다.

우리의 옹이와 같은 마음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용목을 만드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용목으로 만드시려고 마음에 옹이진자들에게 고난과 죽음을 당하십니다. 그리고 그 옹이진자들을 십자가에서 용서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자는 용목이 됩니다.

Las Vegas 총기 사건에서 우리들이 또 한 번 확인하는 것은 우리의 폭력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를 옹이에서 용목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도 폭력을 버리고, 예수님과 같은 태도와 생각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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