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수학에서 포물선을 배웁니다.  그리고 변곡점도 배웁니다.  운동 에너지가 완전히 바뀌는 점이 됩니다.  Plus가 Minus가 되고 Minus가 Plus됩니다.  수학에서 변곡점은 최고의 운동에너지입니다.  최저의 운동 에너지입니다.  최고와 최저를 지나야 새로운 운동 에너지가 나타납니다.

우리 신앙에도 변곡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반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제자들에게 나는 누구냐고 질문합니다.  베드ㅀ의 유명한 고백이 나타납니다.

[막 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왜 예수님이 가이사야 빌립보에서 이러한 질문을 하셨습니까?  그곳에는 로마의 우상, 제우스 신전, 지역의 우상 판신이 있고 무당들이 제사를 드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상들 앞에서 제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질문하신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러한 우상을 신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우리의 돈 앞에서, 명예 앞에서, 저존심, 나의 가정과 자녀, 나의 사업 앞에서. 예수님은 너희들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냐고 질문하십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똑같은 대답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겠다고 할 때에 우리는 모두 안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것은 우리의 소원과 뜻을 거절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가이사 빌립보에 있는 우상들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막 8:35-37]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v.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v.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베드로는 이러한 주님의 말씀에 고민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고민해야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변곡점입니다.  이 선을 지나가야 우리들이 변화합니다.

우리들이 최악의 상태에서 우리의 이익을 버리고 예수님을 선택하면 상황은 반전됩니다.  변곡점은 최고의 운동에너지가 나타납니다.  우리들이 최선의 상황에서 우리의 자랑을 버리고 예수님을 선택하면 우리에게 최저의 운동 에너지가 나타납니다.  겸손과 하나님의 은헤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최고와 최저의 운동 에너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예수로 신앙 생활하지 않는다면 베드로와 같이 입으로는 예수님을 고백하지만 행동으로는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의 무게를 느끼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