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은 가를 논쟁합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당연히 위계질서가 생깁니다.  예수님이 어린 아이 하나를 제자들 앞에 세우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v.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고대시대에 전쟁에서 패배는 노예가 되거나 죽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줄 사람은 적과 싸울 수 있는 장성한 성인들입니다.  무기를 들고 싸우지 못하는 여자들과 아이들은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재산의 일부이기에 부모의 빚으로 노예로 팔리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는 너와 나의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수단과 목적으로 삼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을 나와 같이 여겨 달라고 합니다.  너와 나 사이에 나의 목적과 수단이 있으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너와 나 사이에 수단과 목적이 없고,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있다면 상대방의 슬픔과 기쁨이 나의 슬픔과 기쁨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철저하게 쓰레기로 매도하고 자신을 의롭게 여긴다면 그 인간은 상대방을 수단과 목적으로 삼는 비참한 인간입니다.

너와 나 사이에 하나님이 있다면 우리는 낮아지고 겸손해집니다.  거짓과 야망이 사라집니다.  그 상대방이 하나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람입니다.

2018년에 우리는 비극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알량한 성경구절과 몇개의 지식과 성령 체험했다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에 긍지와 자랑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의 시대에 우리 자신의 자화상을 회복해야합니다.  타인을 존중하고 그 사람의 존엄성을 인정해야합니다.  만약에 이러한 행동이 없다면 그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과 수단을 만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극적 인간입니다.  비참한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교만하지를 대적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긍지와 자랑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누구를 바라보든지, 이해와 겸손과 사랑을 태도를 갖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