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가면 아주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 있습니다. 황금 돔이 있는 이슬람 사원입니다. 일명 Dome of Rock 입니다. 유대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곳이라 하고, 이슬람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슬람은 성경의 내용과 다르게 말 합니다. 이슬람은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조상 이스마엘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곳에 들어가보는 것이 매우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정해져있고, 유대인들이 들어가면 회교도들이 돌을 던집니다. 저는 한번 들어가본적이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위치를 가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구조적으로 보면 4개의 뜰이 있습니다. 가장 바깥은 이방인의 뜰 그 다음은 유대인 여자들의 뜰 그 다음이 유대인의 남자의 뜰 그리고 가장 안쪽에 제사장의 뜰이 있습니다. 이방인의 뜰은 유대인이지만, 죄인들, 소경과 다리는 저는 자들도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지만 죄인은 이방인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에는, 이방인의 뜰이 없습니다. 나중에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에만 이방인의 뜰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이러한 이방인의 뜰을 지나지 않으려고, 구름다리를 만들어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왜 가장 나중에 세워진 헤롯의 성전, 예루살렘 성전에만 이방인의 뜰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모세오경은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또한 유대인이지만 절름발이 소경 신체불구자들 신낭이 상한 자 (고자)는 제사장도 될 수 없고 제사도 드리지 못합니다. 이들은 유대인이지만 이방인과 동일한 취급을 받아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모든 자들이 하나님께 나올 수 있습니다. (이사야 53:3-8) 고자와 이방인들이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다고 합니다. (v.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됩니다. 하나님은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기 위하여 이방인과 고자를 구원하시겠다고 합니다. 고자는 신체불구자를 대표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예루살렘은 2천년 전의 예루살렘 성전과 하나도 차이가 없습니다.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하는 주장만하는 곳입니디.
제가 아주 독실하고, 보수적 유대교 신자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너희들 이슬람 성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제사를 드릴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합니다. 제사장의 후손, 레위지파가 없다고 합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제사장의 직책은 끓어져있습니다. 성전을 지어도 제사를 드려줄 제사장이 없습니다. 죄의 용서를 빌어줄 대제사장이 없습니디.
제사장을 Hebrew로 Cohen이라고 합니다. 유대인중에 가장 흔한 이름이 Cohen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일부 한국 교회 신자들은 이슬람 성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예루살렘 성전이 들어서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에서 요주의 인물의 하나가 한국인들입니다. 그곳에서 통성기도하고, 이슬람 사원이 무너지라고 빙빙 돌기도 한다고 합니다.
만약에 이러한 태도를 갖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의 예루살렘을 회복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그가 오셔서 성전의 휘장을 위에서 밑으로 찢으셨습니다. 더 이상 성전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예수에 의해서 새롭고 산길이 열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새롭고 산길이 아닙니다. 오늘도 예루살렘 성전이 새롭고 산길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앙의 정체성을 갖는 사순절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