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 성경은 장과 절이 있습니다. 호세아서도 14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또한 각 장 마다, 절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물론 구약 성경이나 신약이 오늘과 같이 나누어진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구약 성경은 문단으로 나누어져 있을 뿐입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호세아서를 오늘 날의 장과 절이 없이 읽는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요? 굉장히 혼란스럽습니다. 하나님이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죄악을 보시고, 벌을 주십니다.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다시 그들을 용서하시고, 두 번 다시 벌 주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시 한 번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고, 벌주고,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이 사랑하시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계속 반복됩니다.
호세아 뿐 만 아니라 다른 선지서에도 이러한 내용이 끓임 없이 반복됩니다. 성경이 왜 이렇게 계속 반복 할까요?
우리는 누가 복음의 탕자의 이야기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상상합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준 옷과 신발과 반지를 팔아서, 또 한 번 집을 나갔을 것입니다. 돼지와 같이 죄를 먹고 마십니다. 둘째 아들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오늘도 둘째 아들,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히 11장) 믿음의 조상들을 설명합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기에 구원의 증거는 받았지만 약속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구약의 모든 인물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구원의 증거 확실하지만, 약속, 예수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 이러한 반복되는 죄의 용서와 징계, 하나님의 사랑에 정통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롬 1:17에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변형시킵니다.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영어번역은 From faith to faith 입니다. 믿음이지만 절대로 같지 않습니다. 예수 있는 믿음과 예수 없는 믿음이 있습니다. (히 11)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예수 없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증거는 있지만 약속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있는 믿음은 증거와 약속이 동시에 주어집니다. 예수 있는 믿음은 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가면 용서와 사랑을 받는 증거도 확실하고 약속이 있습니다.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From faith to faith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문법적으로 믿음이지만 다른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히 12)은 이렇게 구원의 약속을 받은 자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기록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나의 십자가입니다. 나의 십자가를 진 자들은 고난과 시련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주어질 하늘 나라로 참고 인내합니다. 오늘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돌아온 탕자가 예수의 믿음, 약속의 믿음을 가졌다면, 그는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는 집에서 나의 십자가로 무진 고생과 고난을 당합니다. 집 안에서 시련과 어려움을 당합니다. 믿음은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의 잔소리를 듣고, 형님에게 구박을 당하고, 참고 견디며 사는 것입니다.
그는 금 가락지 끼고, 좋은 신발을 신고, 비단 옷 입고 평생을 살 수 없습니다. 둘째 아들도 큰 아들과 같이 밭에 나가서 죽도록 일을 해야 합니다. 큰 아들과 같이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염소 한 마리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잔치는 한 번으로 족하지 두번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이러한 잔치에 대해 불평을 하는 큰 아들을 나쁜 놈으로 만듭니다.
오늘 날 교회와 교인들은 둘째 아들을 신데렐라, 성공의 이야기, 행복의 이야기, 축복 받은 이야기로 해석합니다. 참으로 위험합니다. 아주 나쁜 해석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둘째 아들은 착한 아들, 첫째 아들은 나쁜 놈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집에서 끝까지 고생하는 큰 아들이 다시 한 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의 불평을 심하게 나무랍니다. 그러나 큰 아들의 불평을 들은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나의 것이 너의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큰 아들은 나쁜 놈, 작은 아들은 우리들이 본 받아야 할 복 받는 분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을 제대로 이해하면 큰 아들은 착하고 둘째 아들은 본 받을 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첫째 아들과 같이 아버지의 집에서 참고, 견디며, 끝까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버지의 것이 나의 것입니다. 아버지의 하늘 집이 나의 집입니다.
올바른 믿음을 이해해야 호세아서의 끝없는 반복이 이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