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호세아서가 끝이 납니다. 호세아서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결혼으로 비유해서 설명합니다. 우리와 고멜의 같은 입장이기에 14장을 해석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예수님과 결혼했지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죄악과 결혼을 했습니다. 우리의 결혼은 매우 부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정결한 신부로 여기지만 우리는 결코 정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죄의 세상에 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정적 관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14장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야스퍼스는 한계상황에서 초월자, 신적 존재를 대면한다고 합니다. 그는 우리들이 어떠한 극한 상황,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한계 영역, 한계 상황에서 초월적 존재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육체적, 정신적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정당화시키자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 부부사이에서 아내나 남편이 제 3자와 부정한 관계를 가졌다면 그것을 용서하고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관계가 발각이 되었다면 즉시로 회개해서 원래의 관계로 원상복구 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고멜에게 이러한 노력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끓임없이 죄악과 간음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완전히 파탄이 난것입니다. 하나님이 이혼을 해주시지 않은 것이지, 이혼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이러한 관계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v.4-8)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v.5)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v.6)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v.7)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v.8)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랑하십니다. 우리들이 죄악과 간음을 하면, 하나님은 분노하고, 화를 내시고,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죄악과 간음을 계속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끓임없이 사랑하십니다. 우리들이 죄악과 결혼을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죄를 지어도 좋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악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들이 이 상황을 극복 할 수 있는 실력과 인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결혼 관계를 유지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존이며, 우리의 한계입니다. 바울의 고백대로 누가 나를 이 사망에서 건져 낼 수 있는가 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존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깊은 절망에서, 우리는 신의 존재, 하나님의 절대성이 요구되어집니다. 야스퍼스는 이것을 철학적으로 초월자, 신의 암호라고 합니다. 신의 존재가 필요해지는 순간입니다.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야스퍼스는 우리들이 초월자, 신적 암호를 풀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신,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찾아오십니다. 우리에게는 철학적 암호가 아니라 뚜렸한 십자가로 찾아왔습니다.
다만 제가 애스퍼스를 인용하는 것은 한계 상황에서 초월적 존재를 만난다믄 그의 철학에 동감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적으로도 이렇게 고민하면 신을 만납니다.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세상과 결혼한 부정한 관계이지만, 오늘도 우리의 죄악으로 절망하며, 한계를 느낄 때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