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 성으로 가서 회개을 요구하며 외치라고 합니다. 니느웨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의 10 부족을 사라지게 한 장본인들입니다. 오늘 날 사마리아 지방을 정복한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원수 앗수르를 회개시키라고 합니다.
요나는 유대민족주의자입니다. 당연히 자신의 민족을 멸망시킨 앗수르에 반감을 갖습니다. 그들의 회개를 요구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배를 타고 다시스로 도망을 갑니다.
어제 우리는 오바댜를 공부했습니다. 오바댜는 에돔에 대한 심판입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오바댜는 철저한 유대적 입장에서 쓴 예언서라고 합니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예언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요나서는 반대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을 도말한 앗수르를 하나님이 구원하시려고 합니다. 또한 요나의 회개 요구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를 합니다. 하나님이 니느웨에 심판을 중단하십니다. 요나서 4장을 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에 불만을 갖고 있는 요나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유대민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서를 통해서 유대 민족주의을 벗어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민족을 사라지게한 앗수르도 사랑하십니다. 그럼으로 오바댜와 요나는 서로 반대 입장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언서를 계속 공부했지만, 예언서의 중요한 흐름의 하나는 바벨론 포로 이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우주만물의 하나님, 모든 인류의 하나님으로 계시되어집니다. 그럼으로 예수님도 요나서의 내용 인용하십니다.
요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해하야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선민 사상, 유대 민족 주의적 개념을 벗어나게하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니느웨가 예루살렘입니다. 하나님이 이방인을 유대인만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하나님이지만 니느웨의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지만 앗수르의 하나님입니다. 유대인의 하나님이지만 한국인의 하나님입니다.
또한 요나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비둘기입니다. 성경에서 비둘기는 노아의 방주에서 벗어나는 신호의 역활을 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 성령을 상징합니다 비둘기는 방주와 같이 갇혀진 사고방식, 민족주의, 굳어진 종교 행태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날 일부 교회와 신자들의 태도는 반성해야합니다. 일부 개신교는 교회 지상주의을 주장합니다. 교회가 최고라고 합니다. 이것은 Catholic의 개념을 그대로 차용합니다. 하나님은 교회 이전에 가정을 세우셨다는 것을 무시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복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 날 교회의 굳어진 종교행태입니다. 목사는 교인을 속이고 목사는 자신의 신앙 양심을 속입니다.
또한 세상에 대한 안하무인 태도로 행동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정말로 무식합니다. 예의도 없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부도덕을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축복이라고 떠들어 댑니다. 그 결과 교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예절도 없고 무식한 행동을 남발합니다. 오늘 날의 설교단은 너무나 비루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날의 교회는 독불장군입니다.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을 거부합니다.
요나는 비둘기입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말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요나서를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