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사에 왕 사냥해서 잡은 새를 신하가 죽였습니다. 당시 왕의 새를 죽이면 그 새를 돌보는 자도 죽어야 합니다. 왕이 신하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헤로운 신하가 왕에게 저자를 죽이기전에 저의 죄 3가지를 알리고 죽여야 한다고 합니다. 다름과 같이 3가지의 죄를 고발하고 사형을 시키자고 합니다.
첫째는 왕의 새를 죽인 것이 죄라고 합니다. 둘째는 왕이 새 한 마리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하는 죄라고 합니다. 셋째는 왕이 사람보다 새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신하들에게 알게 하는 죄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신하의 말을 들은 왕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사형을 중단시킵니다.
매우 지혜로운 신하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태도를 바꾼 왕도 훌륭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하늘의 태양 아래에 서면 빛과 그림자가 동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긍정적 부정적 요소가 있습니다.
본문은 미가서의 마지막입니다. 미가는 히스기야가 왕일 때의 예언자입니다. 히스기야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일수 있고 매우 부정적 일 수 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의 종교 개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종교 개혁이 정치적으로 의도적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아하스의 철저한 우상숭배에서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정치적 수단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두려워 바벨론을 끌여 들여서 앗수르와 전쟁을 이기려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강함을 바벨론에게 알려 주려고, 자신의 군대와 보물을 바벨론에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선한 의도는 바벨론에게 유대가 망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히스기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긍정적 부정적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이익과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의도적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새를 죽인 신하를 죽이지 않는 왕도 자신의 명예와 이익과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의도적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신하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징벌과 회개입니다. 미가는 7장에서 유대의 죄악을 철저하게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유대를 바벨론 포로의 사건으로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그 유대인들을 7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오게하십니다.
이러한 사건은 이렇게 다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서 구원을 위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하십니다.
미가는 이러한 하나님을 이렇게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v.18-20)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v.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v.20)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하나님과 같은 신, 하나님만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하고, 좋은 것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지 않으십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조롱하는 죄에서 벗어나게 하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아시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