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또 하나의 환상이 나타납니다. 1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가 양탄자가나타납니다. 이 두루마리는 십계명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선한것과 악한 것이 공존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선한 것이 좋다는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것대로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상황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황윤리가 나타납니다. 전쟁에 나간 군인은 상대방을 죽여야 자신이 삽니다. 의사는 환자의 안정을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적에게 거짓말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십계명이 대립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리들이 상황에 따라 살 때에 십계명과 대치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우리들이 얼마든지 확대해석 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확대되면 하나님의 말씀은 약화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주어진 상황에서 갈등하고 방황합니다.
오늘의 환상은 이러한 상황이 제게되는 것입니다. 악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6절에서 11절의 말씀은 그 악을 납으로 밀봉해서 두 명의 천사가 시날 땅으로 옮겨가야합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하던 우상들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으로 핵석 할 수 있습니다.
6장의 환상은 우리에게 주어질 승리와 영광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첫 번 단계가 악의 제거입니다. 우리들이 상황에 빠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되는 예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미 주어진 상황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됐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죄인일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의인입니다. 죄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상황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결정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군인으로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상황에 놓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은 군인이기에 전쟁을 해야 합니다. 적을 죽여야 우리의 가족의 생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적도 우리를 죽여야 자신의 가족과 생명을 지킵니다. 적도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 신자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적을 죽이지 아니하고 살 수 없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전쟁에서 적을 죽이려고 적을 만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상황이 하나님이 계신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적을 죽일 것인지 내가 죽을 것인지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만난 예수,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고민하고 아파하고 고통을 당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수없는 상황에 빠집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