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미래에 유대에게 주어질 승리와 영광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현실은 참담합니다. 어떻게 현실은 비극인데, 미래를 희망으로 볼 수 있습니까? 현실은 고통인데, 현재에 감사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2 가지로 구분 할 수 있습니다. 보는 것을 보는 것과 듣는 것을 듣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의 사람은 보는 것을 보지 아니하고 듣는 것을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누가 진정한 사람이 될까요? 누가 행복한 사람이 될까요?
우리들이 듣는 것을 듣고 보는 것을 보면 우리는 환경의 지배를 받습니다. 깊이 생각 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너무나 중요해집니다.
그러나 보는 것을 보지 아니하고, 듣는 것을 듣지 아니한다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거나 회피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지금 나에게 엄청난 고민과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현실과 상황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실과 상황과 싸우려고 합니다. 우리는 사람과 싸우고 자식과 싸우고, 돈과 싸우고, 나의 당면한 문제와 싸웁니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나와 나의 싸움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과 싸우셨습니다. 이세벨에게 쫓기는 엘리야는 동굴에서 자신과 싸웠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치기로 자신과 싸웠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자식들의 골육상쟁과 심지어는 자신을 죽이고 왕이되려는 아들을 보면서 자신과 싸웠습니다.
이렇게 싸울 때에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아주 가까워지는 순간입니다. 이러한 순간을 포착하고 듣고, 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순간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보는 것을 보지 아니하고 듣는 것을 듣지 않습니다. 상황과 현실에 속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사람과 세상의 것이 나타나지 아니 할 때에 들려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선택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들리지 아니하는 음성을 듣고, 이세벨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광야의 고독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출애굽의 지도자가 됩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자식들의 골육상쟁과 자식의 배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에게 들려집니다. 그러나 들을 것을 듣고, 볼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들을 것을 듣지 아니하고 볼 것을 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오늘도 우리 자신에게 주어지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