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6장 1절 (우리의 신분과 하나님의 의)

우리 각 사람은 다양한 신분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집에서는 가장이고, 교회에서는 목사이고,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친구입니다.  심리학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가 이러ㅏ한 신분에 대한 구별입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친구에게는 친구, 교회에서는 목사, 집에서는 가장이라는 의식이 철저하게 구분되어 진다고 합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아니히면 집에서도 목사, 친구들에게도 목사로 착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마 6:1-a) 사람에게 보이려고.

예수님은 우리들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무엇인가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끌려고 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배우로 연극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이 어떠한 행동이 사람 때문에 한다고 합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눈길을 끌어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행동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연극이 됩니다. 가짜가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행동으로 의로운 존재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셔야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행위로 의로운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이것을 잊으면 우리는 의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는 강박증에 걸립니다.

새벽기도 좋은 것이지만 우리는 기도로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십일조 헌금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로 우리들이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 기도와 십일조 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혜와 특권입니다.  은사입니다.  세상에는 허락되지 않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미 의로워진 존재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사회적 신분, 가정에서 역활, 교회에서 역활, 사회에서 역활에 충실해야합니다.

직장에서 직원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아내와 남편으로, 자녀들의 어버이로 신실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의에 대한 찬양입니다.  교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직임에 대해서 열의와 정성을 갖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의에 대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이러한 구별과 질서가 하나님의 영광 올리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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