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자식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 올 때마다 현관을 Knock하면서 제가 이 집에 들어가도 되느냐고 절대로 묻지 않습니다. 그저 인사 정도 하고 집에 들어옵니다. 아이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들어옵니다. 믿음과 사랑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 집에 들어 올 때에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자식의 친구는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집 자식은 우리와 믿음과 사랑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허락 없이 들어오면 불법입니다. 강도나 도적이 됩니다.
올바른 가정 교육 받은 자식들은 부모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면 부모로 믿고 신뢰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매를 맺고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지 아니 할 지라도 부모를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부모 자식은 상대적 관계 아닙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으로 부모가 항상 채워주고 만족 시켜주어야 한다면 그 부모는 자식을 망치는 것이고 자식은 망나니가 됩니다.
부모 자식은 절대적 관계입니다. 천륜이라고 합니다. 조건에 따라 반응하지 않습니다. 절대적 관계, 절대적 믿음, 절대 사랑은 나의 필요와 부족을 채워주어야 한다는 조건이 없습니다. 나의 필요 보다 아버지, 부모 자체를 믿기 때문입니다.
절대 관계는,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로 만족 할 뿐입니다. 전 날 밤에 죽도록 매를 맞아도 다음 날 아침에 공손히 인사하고 학교 가는 것이 절대 관계입니다. 이러한 자식들이 사회에 나아가 성공합니다. 죽도록 맞았다고 내 부모 아니라고 집을 나가는 자식은 스스로 절대 관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식은 절대로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자녀와 부모가 절대 관계가 되기 위하여 부모는 희생하고, 수고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이 자식에게 수고해야 합니다.
(v.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시중들더라.
우리는 주님이 베드로 장모를 그저 손을 댄 것으로 이해합니다. 영어 번역도 Touched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번역을 한다면 Touched보다는 Handled 정확합니다. 우리들의 상상을 // 초월하는 만져주심입니다.
만지시니 Hella로 보면 Hapto입니다. 이 단어는 원래 불을 취급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는 // 등불을 켜는 것으로 사용합니다. Hapto라는 단어는 매우 세심하게, 주의 깊게, 정성스럽게 만진다는 의미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불을 가장 신성한 것의 하나로 정화와 치료의 상징입니다. 추위를 지켜주는 수호신입니다. 한국에서도 아녀자가 부엌의 불씨를 꺼뜨리는 것이 아주 부끄러운 일에 해당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기적을 오해하는 것이 그저 예수님이 손을 대서 낫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주님이 베드로의 장모에게 손을 대실 때에, 주의 깊게, 정성스럽게 손을 대셨습니다.
우리 자식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베풀고 있습니까? 최근에 아이들을 Pick up하는 부모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들은 차를 타자 마자 자신들의 눈 앞에 있는 Video을 보고나 i-phone으로 game을 합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정성스럽게 주의 깊게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불과 같습니다. 잘 다루면 이 세상의 빛이 되지만 잘못 다루면 부모의 마음을 태워버립니다. 아이들의 마음의 불을 보고 계십니까? 엄마는 아이들에게 학원과 공부을 강요합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바쁘기에 아이들의 마음의 불이 어떠한 상태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믿음의 불과 사랑의 불을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아버지는 바쁜 아버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엄마는 자식에게 강요하는 엄마입니다.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 하기에 바쁘고, 엄마는 자식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자식에게 강요하면 그 마음의 불을 꺼지는 중입니다.
많은 부모들은 이 시대의 문화와 정신의 핑계를 댑니다. 그 결과 우리 자녀들을 i-phone에게 빼앗기고, Video에 빼앗기면서 아이들 마음의 불을 꺼뜨리는 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강제로 i-phone과 Video를 빼앗지 마세요. 가장 실력 없는 부모의 행동입니다.
엄마의 시간을 아빠의 시간을 십자가에 못 박으세요. 아이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입니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Black Mirror (전화기나 컴퓨터 화면)에서 자신의 얼굴을 봅니다. 엄마와 어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그 결과 매우 이기적인 아이들이 됩니다.
부모가 자식의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자식들이 Black Mirror을 빼앗아야 합니다. 이것이 시간의 전쟁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이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들이 지금 시간을 주면, 아이들이 훌쩍 커서 어른이 되고 우리의 시간이 많을 때에 그 아이들이 우리에게 시간을 줄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 장모의 손을 만지시는 것처럼 우리 자녀의 마음을 만지는 일생이 되길 바랍니다. 이러한 시간의 기적을 경험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