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우리들이 기도에 많이 사용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v.23) 우리들이 옥토가 되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 맺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아름다운 소원의 기도이지만 이러한 기도는 본문을 왜곡하게 됩니다.
우리의 현실은 항상 옥토가 아닙니다. 우리의 현실은 때로는 길가와 같이 메마르고 돌밭과 같이 척박하고 가시떨기와 같은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옥토와 같은 행복과 만족이 있지만 항상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늘 날 우리는 우리의 성공을 30-60-100배의 열매로 간주합니다. 교회는 교회의 양적 성장과 전도 선교 구제 봉사 열매도 30-60-100배의 열매로 이해합니다.
아주 교묘하지만 이런 것은 올바른 열매가 아닙니다. 열매는 씨를 뿌리는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열매를 얻기 위해서 씨가 중요하고 씨 뿌리는 사람 태도가 중요합니다. 주님의 씨 뿌리는 태도가 참으로 이상합니다.
(v.4-7)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v.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v.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v.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v.8) 더러는 //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v.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일반 농부들은 절대로 길가 돌밭 가시 떨기에 씨앗을 뿌리지 않습니다. 주님은 길가 돌밭 가시 떨기 옥토에 균등하게 뿌립니다. 씨 뿌리는 양의 차이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v.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십니다.
옥토에서 한 알의 콩으로 수많은 콩을 얻는 것 기적이 아닙니다. 당연한 자연적 현상입니다. 그러나 열매 맺지 못하는 길가에서 자갈밭에서 가시 떨기에서 한 알의 열매를 맺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들이 길가와 자갈밭과 가시떨기와 같지만 사랑과 말씀의 씨를 뿌리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이해하신다면 이제부터 우리들에게 길가와 자갈밭과 가시떨기와 같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기대 할 수 없고 사랑 할 수 없고, 반발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30-60-100배의 열매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바르게 깨우쳐 주시는 목사님 말씀에 항상 은혜를 받습니다.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