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갖고 있습니다. 종교는 인간을 비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Netflix에서 Brooklyn에 거주하는 하시딤 유대인(Hasidic Jews)에 대한 Documentary를 봤습니다. 제목은 One of us입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같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뉴욕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수염을 깍지 아니하고 남자들은 구렛나루를 길게 기릅니다. 여자들은 머리를 기르지 못하고 가발을 쓰고 다닙니다. 아이들에게 internet와 i phone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죄라고 합니다. 아이들의 교과서에서 여자의 얼굴은 다 지워버립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이들에 대한 교육은 율법서를 읽게 하는 Idish와 기초적인 영어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전혀 적응 할 수 없습니다. 가게나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기초적 수학능력이 없기에 거의 불가능합니다. 남자와 여자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Torah와 율법서만 읽습니다. 여자들은 아이만 낳습니다. 평균 5명의 이상의 아이들을 출산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지원으로 기초적 생활만을 유지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마약에, 가정폭력에, 세상의 자유가 그리워서 그들의 종교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랍비들이 결정을 합니다. 그들은 랍비의 결정에 따라 살아갈 뿐입니다.
랍비와 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가 대화를 합니다. 랍비는 아주 극소수만이 Idish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세상에 나가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자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우리들은 세상에 나가서 적응하지 못하기에 이러한 비정상적 사회에서 살아야 할 뿐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따라서 이 세상을 죄악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으로 세상과 철저하게 담을 쌓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New York시 한 복판에 우리와 같이 살아갑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합니다. 예수님이 요한의 제자들의 비난에 대해서 유명한 비유인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는다고 하십니다.
종교는 타락하면 종교성으로 종교를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종교적 우위를 강조합니다. 이것을 율법주의라고 합니다. 극단적 성향을 취함으로 자신들과 타인들을 구분합니다. 그 결과 인간에게 비정함이 나타납니다. 타인을 정죄하고 세상을 부정하고, 율법에 벗어난 행동에 제재를 가합니다.
종교는 인간성의 회복입니다. 종교는 문화와 시대와 대화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Cult, 광신적 집단이 됩니다. 종교의 비정함은 하나님의 시대와 문화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는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종교개혁을 하신 분입니다. 종교성이 아니라 신앙,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강조하셨습니다. 성령에 의한 인간성의 변화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종교성으로 우리를 증명하려고 하면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오늘 날의 하시딤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습니다. 종교 때문에 비정한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부인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어 오늘도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통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하루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의 One of us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One of us가 아니라고 해도 안 됩니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과 세상의 경계선에 있습니다. 이것을 잊으면 기독교는 비정한 종교가 됩니다. 많은 한국 교회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One of us 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One of us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를 믿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기쁨으로 사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