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복음 2장 12-23절 사순절

우리는 꿈을 꿉니다.  우리들이 왜 꿈을 꾸는지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Sigmund Freud와 Carl Gustav Jung은 꿈을 비현실적인 사건이 아닌 실질적으로 일어나는 삶의 일부분으로 봅니다.  그들에게 꿈은 하나의 현실입니다.   프로이드와 같은 학자는 꿈을 통해서 그 사람의 정신을 분석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예측합니다.  우리도 꿈을 꾸면 그 꿈으로 프로이드와 같은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구약에서 꿈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의 전달 매개체입니다.  요셉의 꿈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구약은 꿈에 대해 부정적이기도 합니다.  거짓 선자자의 꿈과 복술자의 해몽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신 13:1-5) 꿈꾸는 자를 죽이라고 합니다. 사악한 꿈이 있음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꿈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꿈은 반드시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한 보조적 도구입니다. 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우리가 꿈에 하나님을 보고, 예수님을 봤다고 할지라도 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꿈을 통해서 나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가 입니다.

(2장 :12) 헤롯은 동방박사들에게 아기 예수를 만나면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꿈에 헤롯의 부탁을 거절하고 다른 길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꿈 때문에 다른 길을 갑니까?  아기 예수 때문에 다른 길로 갑니까?  어느 것 때문에 다른 길로 갑니까?  외형적으로 꿈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성경은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1:18-25)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v.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v.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을 알고 조용히 파혼을 계획합니다.  그러나 20절에서 23절을 읽으셔야 합니다.

(v.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요셉이 꿈을 꿉니다.(v.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v.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하니라 (v.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v.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v.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v.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꿈도 중요했지만, 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요셉은 그 꿈대로 행동했습니다.

(v.24-25)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v.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그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옵니다. 그와 잠을 자지 아니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행동의 연속입니다.  성경은 꿈의 중요성이 아니라 꿈에 나타난 예수를 위한 계속되는 행동입니다.

(v.13)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다시 요셉이 꿈을 꿉니다.  헤롯은 두 살부터 그 아래의 아기를 다 죽이게 됩니다.  꿈에 애굽으로 피신을 가라고 합니다.

(v.13-b)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은 그 꿈대로 행동을 했습니다.  계속 꿈의 행동이 반복됩니다.

(v.22-23)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v.23)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오늘 우리들이 무슨 꿈을 꾸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꿈에 보든지, 하늘의 영광에 참여했던 꿈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행동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꿈의 해석으로 사순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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