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1장 성전

성전은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한 고정 건축물입니다.  성전 이전의 모형은 장막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서 성전은 하나님이 거주의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나 장막은 하나님이 임재가 더 강합니다.  거주와 임재는 다릅니다.

장막은 Tabernacle입니다.  성전은 Temple입니다.  장막에는 언약궤가 있으며 그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이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에서는 언약궤가 지성소에 보관됩니다.  그 장소는 가장 거룩한 곳이기에 일년에 한 번 대제사장만이 접근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에, 하나님이 성전에 거하심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늘도 하나님을 용납 할 수 없는데, 성전에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까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거주를 간접적으로 나타나냅니다.  그러나 왕상 8장은 성전에 거주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간구하는 귀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만들면서,  대략 2 가지를 실수하게 됩니다.  성전의 제사가 몇 몇의 제사장직에 의해서 제한 됩니다.  그러면서, 제사장직이 정치적 중요한 역활을 합니다.  제사가 정치화합니다.  이 내용은 다윗과 사울, 그리고 솔로몬의 왕권 계승에서 아주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사보다 젯밥에 눈이 멀어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사울이 다윗을 도와 준 제사장을 죽이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성전 건물의 절대화, 우상화가 나타납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결정됩니다.  유월절에 반드시 성전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합니다.  이로 인한 일반 백성의 경제적 문제와 예루살렘의 특권층에 대한 부의 집중이 심화됩니다.  그것이 바로 제물에 대한 선별과 구매 시장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장이 바로 이방인의 뜰에서 열립니다.  이방인의 성전 출입이 원천 봉쇄됩니다.

이러한 부정적 현상애 대해서 예수님이 성전의 제사장, 바리세인, 서기관의 다툼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에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이유의 하나가 성전 모독죄입니다.

이러한 2가지의 부정적 현상을 감추려는 시도가 성전을 우상화합니다.  성전을 절대적으로 거룩하게 만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얼마든지 우상화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앙이 정치와 교조화, 이익 집단으로 변질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변질되는 가장 큰 이유는 외형적 거룩을 강조 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거룩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거룩함이 지나치면 신앙은 종교화되고 종교화되면 우상화가 됩니다,  성전은 극도록 거룩함을 강조했습니다.  그 예로 성전의 제사장들의 거룩함을 강조하려고 그들은 성전에 출입 할 때에 구름다리를 만들어서 출입했습니다.  오늘 날의 육교을 만들어 출입을 했습니다.   성전의 우상화에서 자신들을 우상화합니다.

계속해서 성전에 대해서 보내겠습니다.

우리의 거룩은 성령에 의한 거룩으로 나타나야합니다.  이렇게 거룩해진자가 성전이 되고,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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