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북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떡을 굽는 화덕에 비교합니다. 유대인들이 떡을 굽는 화덕은 다음과 같습니다.
왕궁이나 집에서는 오늘 날 Pizza oven과 같은 화덕을 만듭니다. 밑에는 불을 때울 수 있는 시설이 있고 그 위에는 커다란 돌을 놓습니다. 그리고 진흙으로 그 위를 덮습니다. 그리고 반죽 한 것을 Pizza 굽는 것처럼 돌 위에 올려놓고 떡을 굽어냅니다. 이러한 방법은 많은 양을 한꺼번에 구워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화덕을 의미합니다.
창세기에 요셉의 꿈 해몽에서 떡 맡은 관원장이 나옵니다. 바로 이러한 화덕에 떡을 굽는 책임자를 의미합니다. 아주 중요한 직책입니다. 왕에게 떡 // 음식을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짧은 역사에 약 19명의 왕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8명의 왕들이 암살 당합니다. 특히 15대에서 호세아가 에언하던 19대 마지막 왕 까지 5명의 왕중에 3명은 암살, 1명은 쿠테타로 왕이 바뀝니다.
호세아는 마지막 왕도 암살 당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암살에 떡 맡은 관원장이 중요한 역활을 합니다. 왕이 가장 믿고 신뢰하는 자가 왕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5절에는 술 맡은 관원장도 배신에 합세를 합니다. 떡과 술에 독약을 넣는 것 같습니다.
(v.4-7)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라 과자 만드는 자에 의해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 그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효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 (v.5)우리 왕의 날에 지도자들은 술의 뜨거움으로 병이 나며 왕은 오만한 자들과 더불어 악수하는도다 (v.6)그들이 가까이 올 때에 그들의 마음은 간교하여 화덕 같으니 그들의 분노는 밤새도록 자고 아침에 피우는 불꽃 같도다 (v.7)그들이 다 화덕 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들의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그들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배신을 합니다. 그러나 배신을 하는 사람도 배신 할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배신이 정의입니다. 배신으로 모든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배신이 악이 아니라 선입니다. 왕을 죽이는 것으로 나라와 백성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배신하는 자에게는 배신이 아닙니다. 배신하는 사람에게는 정의와 선입니다. 그 결과 인류 역사에는 수많은 배신이 일어납니다. 배신을 정당화합니다. 로마를 위해서 자신의 양 아버지 시이저를 죽이는 부르투스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의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New Jersey는 Garden state 입니다. 무성한 나무들과 아름다운 꽃들이 한창입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하늘의 태양을 향하여 자신의 생명력을 나타내는 꽃과 나무를 보고 자연의 신비를 찬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의 것을 보지 못하기에 배신합니다. 생명의 근원은 뿌리에 있습니다. 그 꽃과 나무들이 빛도 없는 땅속에서 물을 찾아 뿌리를 내리려고 흙을 파고 내려가는 고통과 바위를 뚫는 시련을 무시합니다. 죽음과 같은 고통이 바로 그 나무들의 뿌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왜 우리에게 배신이 생길까요? 왜 우리의 인간관계에는 아픔과 고통이 나타날까요? 우리는 상대방의 태양을 향하는 모습만을 볼 뿐입니다. 상대방이 땅 밑을 향하는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너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내가 너보다 더 훌륭하다. 그러기에 배신이 나타납니다.
때로는 우리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식에게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것 만을 요구합니다. 세상에서 승리와 영광을 쟁취하라고 합니다. 패배는 바보 짓이라고 합니다. 끝없이 성공하라고 합니다. 그들의 뿌리를 무시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람의 뿌리를 봐야 합니다. 생명의 근원은 뿌리에 있습니다. 그러면 배신 할 수 없습니다. 이해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울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고 도와 줄 수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소원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늘을 향하는 모습입니다. 교회는 승리의 장소입니다. 패배는 용납 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의 긍정적 사고 방식의 가장 큰 약점은 뿌리를 무시하게 합니다. 오늘 날 현대 기독교가 병든 이유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굿판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요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죽음과 고난과 배신과 절규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뿌리입니다. 패배입니다. 양보입니다. 겸손입니다. 낮아짐입니다. 배려입니다. 배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의 태양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쳐서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죽음과 같은 과정이 있어야 부활의 영광과 승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안목이 없으면 신자가 아닙니다.
오늘 하루를 사시면서 하나님에게 나의 사랑하는 사람의 뿌리를 보게 해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뿌리를 보게 해달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를 보게 해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100% 달라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