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 먼저이고, 그리고 사람이 다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아모스는 우리에게 다른 순서를 보여줍니다.
성경의 많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우상숭배에 대한 질책을 합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북 이스라엘이 경제적 풍성함으로 나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회적 불평등, 부정 부패, 정치 권력의 남용을 질타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것처럼, 부자들은, 권력자들은 상아궁에서 잠을 잡니다. 너무나 풍족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가난한자들은 권력자에게 땅을 빼앗기고, 자신의 자식을 노예로 팔아 부자들에게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들의 고난과 고통은 무시 당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부자들의 제사와 번제, 소제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받으시는 전제 조건이 사회적, 정치적 정의 실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먼저 제사를 드리고,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 중심, 예배가 우선입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들이 먼저 정의롭게, 거룩하게 살면, 예배를 받으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먼저이고, 그리고 나에 대한 예배라고 하십니다.
어느 것을 우리들이 선택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거룩하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룩하게 변화되어 간다고 합니다. 성화, Sanctification를 주장합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100% 맞습니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확인해봐야 합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거룩해졌습니까? 정말로 달라졌습니까?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미운 사람 용서하고 있습니까? 나쁜 습관을 버렸습니까? 주일 날 교회 오는 것으로 거룩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스스로 질문하고 자신에게 답을 해야합니다.
만약에 이러한 변화가 없다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룩하게 변화한다고 주장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스스로 변명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신앙을 추상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오늘 날의 교회는 이것을 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이라고 가르칩니다. 저도 하나님 중심을 절대로 반대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종이지만, 주인 보디발을 감동 시켰습니다. 감옥에서는 간수와 다른 죄수들을 감동 시켯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감동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이는 로마의 백부장을 감동시키셨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중심이 되려면, 사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은혜와 복이되는 예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