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4장 1-14절 (머릿돌-철학적 하나님의 증명)

미국의 철학자의 약 1/3이 기독교 신자들입니다.  과거에는 많은 철학이 신의 존재를 인간의 이성으로 부정했지만 이제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철학이 기독교의 하나님을 증명합니다.  제가 한 가지 추측을 한다면 기독교도 고도의 지식과 이성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과거와 같이 믿는다는 단순 논리로 끝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철학적 변증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의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과거에는 우리들이 철학과 과학으로 하나님을 부정했지만 하나님은 이 시대에 철학으로 과학으로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이 시대에 고도의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3 차원의 프린터는 우리들이 꿈꾸던 물건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영역은 우리 신체의 장애와 불구를 거의 정상인에 가깝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될 수록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인지하거나 행동하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는 고도의 기술과 인공지능의 영향과 지배에 놓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정신 세계는 어떻게 될까요?

많은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시대에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초월의 영역의 필요하다고 합니다.  신비와 기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제가 이것을 기독교 용어로 변경하면 이 시대는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것을 철학적으로 가장 잘 나타낸 사람이  앨빈 플랜팅가 Alvin Plantinga 입니다.   앨빈 플랜팅가 Alvin Plantinga는 미국의 철학자로 하나님의 존재를 철학적으로 증명합니다.  그의 철학을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철학자들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정상입니다.  상식입니다.  지극히 정신적으로 자연스러운 활동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역을 알지 못하는 것은 비정상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v.1) 잠자는 스가랴를 깨우시며 (v.2) 무엇을 보느냐고 묻습니다.  잠자는 자를 깨웁니다.  잠을 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죽은 관계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바벨론 포로 70년 동안 유대인들은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죽은 관계였습니다.

하나님이 7 가지의 순금 촛대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나무 가지를 상징합니다.  Menorah 라고 합니다.  스가랴는 자신이 본 것을 정확하게 설명하지만, 무엇인지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성전을 누가 짓고 있는가를 설명하십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제사장 여호수아, 학개, 스룹바벨등이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6절에서 사람이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짓는다고 하십니다.

(v.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하나님이 성전을 완벽하게 세우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사람이 세우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을 빌리십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힘은 절대로 아닙니다.

(v.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스룹바벨이 성전 건축의 마지막, 머릿돌, Top Stone을 성전 꼭대기에 올려 놓을 때에 성전 공사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되었다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머릿돌은 사람이 올려 놓습니다.   사람이 일하지만, 하나님의 허락으로 성전 공사를 합니다.

(v.14) 기름에 발리 운 두 사람이,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입니다.  이들 머리에 기름을 발랐습니다.  기름을 발랐다는 것은 구별해서 세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목동들은 제물로 쓸 양은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발랐습니다.  구별을 합니다. 기름을 발랐다는 것은 구별 된 자 거룩한 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여호수아와, 스룹바벨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의 교회를 세우는데 우리와 같이 구별된자를 사용하십니다.

우리들이 우리의 신앙을 변증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증명을 해야 이 시대를 살아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증과 증명의 시작은 회개입니다.  원래 기독교는 변증의 시작을 갖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철학적 변증서입니다.  Apologia 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누가복음과 요한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변증을 알려 주십니다.

(v.12) 금 기름이 흘러나와 금등대의 등불을 밝힙니다.  성전의 거룩한 기름은 감람나무 열매를 연자방아에 짓이겨 깨진 것으로 사용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고 싶으면 철저하게 정신적으로 부숴져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나의 죄가 부서져야 회개의 기름이 나오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용서를 받는 기쁨의 기름이 나와야 하고 그 용서함 받은 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인생을 새롭게 살겠다는 결단의 기름이 나와야 합니다.

성전의 기름이 되려면 빻아낸 감람유에서 찌꺼기가 가라앉아야 합니다.  찌꺼기가 있는 기름은 태울 때에 소리가 나며 그을림이 생깁니다. 금 등대에서 사용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나의 마음과 정신을 정리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신학적 정리, 철학적 정리를 요구합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변명, 변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신비하십니다.  하나님은 철학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이 시대의 하나님의 통치와 역사를 인정하고 우리들이 회개해서, 우리 자신을 변명해서 하나님을 이해하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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