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서에 두 명의 도비야가 나타납니다. 한명은 예루살렘 성전을 방해하는 도비야입니다. 하나님은 성전 공사를 훼방하는 도비야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4개의 뿔로 도비야 산발랏 게셈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전 공사를 철저하게 방해합니다.
또 하나의 도비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본문의 도비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헌신의 도비야입니다.
두 명의 도비야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성전을 방해하는 도비야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이익과 고집과 생각으로 나타나는 우상의 하나님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의 자녀와 자신의 자녀들과 혼사관계를 맺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착각을 했고 유대의 제사장들은 그에게 성전의 방을 하나 내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을 반대합니다.
성전을 짓는 도비야의 하나님은 하나님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짓습니다.
오늘 날 하나님의 교회가 이 땅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몸을 성전을 훼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악한 도비야는 선한 도비야의 성전 공사를 방해합니다. 자신의 정당하다고 하면서 선한 도비야를 부당하게 만듭니다. 나는 정당하고 너는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몸, 예수 그리스도를 허물어 버립니다.
우리에게는 현상과 본질이 있습니다. 현상은 역사와 상황에 따라 변질됩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는 여성의 낙태문제입니다. 보수 기독교, Catholic은 낙태 문제를 본질로 봅니다. 본질로 볼 때에 Hillary는 태아의 생명을 죽이는 살인마입니다. 그러기에 살인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술 취한 아저씨 Trumph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인권과 선택을 강조하는 Pro-choice와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사회적 현상으로 봅니다.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Hiliary을 지지합니다. 이것으로 기독교도 서로 갈등 합니다. 문제는 Hillary을 지지하는 기독교 신자들을 진보라고 하는데 이것은 진보와 보수조차 신학적으로 구별 못하는 무지의 무식의 표현입니다.
이렇게 현상과 본질에서 우리들이 갈등 할 때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상황윤리입니다. 상황윤리는 매우 개인적인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상황윤리는 전쟁에 나간 군인은 적을 죽이는 살인을 해야합니다. 의사는 환자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병명을 거짓으로 말 할 수 있습니다. 죽음에서 구해주려고 거짓을 말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적 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 할 수 없는 공백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전쟁에 나가 군인들에게 살인하지 말라고 하면 우리의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적들에게 내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이 전쟁에 나가면 적을 죽이고 살아 돌아오길 바랄 뿐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미국의 신자들이 중동에서 적들을 죽이며 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지 아니하려면 오늘 날의 Amish, Mennonite가 되어 세상과 떨어져 살아야 합니다.
교회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어떠한 현상이 신앙의 본질이 되면 그 현상은 Pedagogy가 됩니다. Catholic에서 낙태는 중요한 교회의 교리로 교육을 시킵니다. 사회적 현상은 종교적 이념으로 교육이 됩니다. 이것이 Pedagogy입니다. 현상이 교육되면 교리가 됩니다.
교리는 우리의 신앙을 지켜주는 매우 중요한 역활을 합니다. 문제는 교리가 교조화 됩니다. Dogma // 도그마가 됩니다. 도그마는 그드들의 신앙의 정체성이 됩니다. 도그마 // Dogma가 되면 우상이 됩니다. 도그마는 성경보다 강한 힘을 갖습니다. 교리가 철저하게 교육되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사라집니다. 인간의 논리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중요해집니다.
교회 역사에서 교회는 도그마로 수많은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십자군의 도그마로 수천만을 죽였습니다. 도그마로 유대인 6백만을 학살햇습니다. 도그마로 미국의 노예제도는 성경적으로 정당화됩니다. 교황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권위가 있습니다.
도그마가 잘못되면 우상입니다. 그 Dogma는 더 무서운 죄악을 만들어 버립니다. 현상으로 나타나는 죄악을 상대화시킵니다. Trumph의 탈세, 여성문제는 Hillary의 낙태, e-mail문제보다 별것이 아닙니다. 도그마화된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죄악에도 작은 죄 큰 죄가 있습니다. 여성의 추행은 참아도 낙태는 참지 못합니다. 죄가 죄가 아닌 것이 됩니다.
우리는 현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본질,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은 결코 본질과 현상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미국 대선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상과 본질에서 고민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