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높은 산을 올라가자고 하시면서 돌을 하나씩 갖고 올라가자고 합니다. 가급적이면 큰 돌을 갖고 올라가자고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대로 무거운 돌을 낑낑대며 갖고 올라갑니다. 의심 많은 도마는 자갈 하나를 갖고 올라갑니다. 요한은 투덜대며 적당한 것을 골라갖고 갑니다. 머리가 좋은 가롯 유다는 저 산위에 가도 돌 천지인데 빈손으로 올라갑니다.
모두 산위에 올라갔습니다. 모두가 허기가 집니다. 주님이 각자의 돌들을 앞에 두고 기도하십니다. 기도가 끝이 나니 돌들이 변하여 떡으로 변해있습니다. 갖고 올라온 돌의 크기와 수고한 대로 떡을 먹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중풍병자의 치유입니다. 친구들이 환자를 메고 왔고 그 환자를 고치는 과정에서 서기관들과의 충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중풍병자를 작은 자라고 하십니다. 그에게 안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질병에 걸리는 것은 죄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v.2) 죄라는 단어는 Hamaltia입니다. 이 단어는 Hebrew의 Hata와 연관성을 갖는데 물매 돌을 던져 표적을 못 맞힐 때에 // Hata 쓰입니다.
다윗이 물매 돌을 던져 골리앗을 죽이지 못하면 다윗이 죽습니다. 이것이 Hebrew의 Hata입니다. 잘못 던지면 다윗이 죽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골리앗을 맞히면 다윗은 살게 됩니다. 신약에서 Hamaltia로 발전됩니다.
우리에게 오늘도 수많은 표적이 있습니다. 그 표적을 맞추면 나는 살고 맞추지 못하면 나는 죽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죽습니다. 우리들이 생로병사, 태어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생리적 표현입니다.
우리들의 심리적 정신적 세계는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표적들, 이 시대의 골리앗에게 정확한 타격을 가해야하지만 맞추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죽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죄로 인하여 죽습니다. 이것이 죄의 값입니다. 우리는 죄로 죽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러한 싸움이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산위에 올라가는 베드로와 같이 우리의 신앙생활은 끝이 없는 시련과 고난입니다.
가룻 유다와 같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실은 평안과 기쁨과 위로만이 있지 않습니다. 오늘 날 많은 신자들은 이러한 신앙을 갈구합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것에 서기관들이 반발합니다.
(v.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서기관들에게는 둘 중의 그 어느 것도 쉬운 것이 없습니다. 둘 다 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들의 입으로 죄를 사한다고 하면 자신들이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중풍병자를 일어나서 걸어가라고 할 기적의 능력도 없습니다.
(v.6-7)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v.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예수님 만 죄를 용서하시고 기적을 만들어 내십니다.
우리는 오늘도 골리앗에게 물매를 던지지만 맞추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매우 피곤합니다. 고단합니다. 믿음을 갖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오늘도 골리앗에게 죽음을 당하는 현실인 것 같지만, 우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의 영광은 죄의 용서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기에 죽음에서 부활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렵습니다. 우리의 결과는 죽음 이후에 주어집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같이 무거운 돌을 갖고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어질 미래의 영광을 바라봐야 합니다.
세상은 이것을 종교적 사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믿음입니다. 세상은 이러한 이야기는 현실을 왜곡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어진 현실입니다.
쉬운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어려운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어려운 것을 선택하고 믿음의 힘으로 오늘도 힘을 내며 사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