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의 사건이 동시적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죽음입니다. 다른 하나는 혈루병 걸린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회당장 딸에게 찾아가시는 중입니다. 혈루병 걸린 여인은 찾아가지 않습니다. 반대로 혈루병 걸린 여인은 예수님을 찾아가고 야이로의 딸은 예수님이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서 가장 완벽한 관계는 예수님이 찾아가시는 야이로의 딸입니다. 목적이 있고, 방향이 있습니다. 혈루병 걸린 여인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목적과 방향 그리고 결과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과 가장 관계 없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디에 가까울까요? 우리의 현실에 방향과 목적을 정하고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현실은 옷 자락을 잡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가십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우리의 목적과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다른 사람들에 떠밀려서 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무관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혈루병 걸린 여인과 같이 잡을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 자락입니다. 우리들이 유대인들이 지나 갈 때에 볼 수 있습니다. 하얀 색깔로 옷 밖으로 나와 있는 끈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탈릿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항상 착용한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쓰던 탈릿을 잘라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얼굴과 몸을 싸매어 줍니다. 탈릿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방향과 목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의 하나로 예수님과 관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단 하나 만질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입니다.
하루에 한 번 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면 우리와 가장 관계 없는 예수님이 우리와 가장 관계 있게 됩니다. 저에게는 오늘도 시편의 말씀이 참으로 큰 위로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