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는 공감입니다. 상대방의 아픔과 슬픔이 저의 아픔과 슬픔이 되고 상대방의 기쁨과 감사가 저의 기쁨과 감사가 되어야합니다. 영어로 Sympathy가 됩니다. 공감은 상대방이 주체가 되고 내가 객체가 됩니다. 내가 그와 같이 됩니다. 그러나 동정은 아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감정적 상태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회자로 상대방과 상담하면서 상대방의 상황을 동정해야합니다. 그러나 동정만하면 상담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동정에서 벗어나서 상대방에게 새로운 길과 방법을 제시해야합니다. 이러한 것을 공감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Empathy입니다.
Empathy는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가는 주체가 나입니다. En (In) -Pathos입니다. 동정은 나의 주체성을 상실하지만 공감은 나의 주체성을 지켜야 합니다. 상대방의 분노와 슬픔에 동정하지만 그와 같이 똑같이 분노하거나 슬픔에 빠지면 안 됩니다.
공감은 동정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입니다. 동정에서 공감으로 이동하지 못하면 문제의 해결은 없습니다. 공감에서 새로운 길과 방법을 찾아야합니다.
(v.5-6)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v.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잃어버린 양으로 비유하십니다. 그들을 동정하십니다. Sympathized입니다.
(v.7-10)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v.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공감이 나타납니다. 전도하는 자는 천국이 가까이 왔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고 귀신을 쫓아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것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모든 것의 특징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논리가 형성됩니다. 예수님의 것을 너에게 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전도하는 자가 전도 받는 자보다 한 단계 높아야 합니다. 전도하는 자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전도 받는 자에게 주는 위치에 있습니다. 주고받는 위치가 아닙니다.
지적으로 감정적으로 물질적으로 모든 면에서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주는 것은 예수님이 전도하는 자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삶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v.9-10)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v.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세상은 돈에 의하여 통치되어집니다. 이 말씀은 세상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돈이나 세상의 것으로 상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격체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공감입니다.
(v.11-15)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v.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v.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v.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v.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이 말씀을 잘 보시면 완전히 동정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잃어버린 양의 상황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전도자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미국선교 단체의 선교 방침의 하나는 안식년입니다. 7년 동안 철저하게 그 문화에 동화됩니다. Sympathized 됩니다. 선교사의 가장 큰 약점이 됩니다. 반드시 1년을 그곳에서 벗어나 안식합니다. 선교지를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합니다. Empathy 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일 주일 동안 살아갑니다. 우리는 세상과 Sympathized 됩니다. 그러나 주일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Empathy 합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야 영혼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월요일에서 토요일의 동정에서 주일의 공감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