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오늘 본문에 회당에 들어가 한쪽 손 마른 사람의 손을 치유하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려고,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냐고 묻습니다.
유대인의 율법도 많은 피를 흘리거나 목숨이 위중하면 죽어가는 사람은 안식일에 병을 고칩니다. 그러나 한쪽 손이 말랐다고 해서 당장 죽지 않습니다. 내일 고쳐도 무방합니다. 불편하지만 다른 손으로 지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병은 안식일에 못 고치도록 했습니다. 만약에 마른 손을 고치면 안식일에 아주 사소한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 안식일에는 1,000 발걸음을 할 수 없지만 어떤 병도 고치러 의사를 만나러 갈 수 있기에 십계명 안식일을 지키라는 4 계명은 무시된다고 유대인들은 생각했습니다. 천 보 이상 걷게 됩니다.
여기에 우리의 갈등이 있습니다. 4 계명을 철저하게 지킬 것인가 아니면 마른 손을 고칠 것인가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v.15)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모든 병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고치셨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4 계명을 파괴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병을 다 고칩니다. 그러나 주님이 안식일에 이렇게 모든 병을 고치시는 것은 사랑이 없는 안식일은 안식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바쁜 현실에서 안식일,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가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예배에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없다면 그 예배는 형식의 예배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됩니다.
우리들이 가장 크게 실수 하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초점이 하나님에게 모든 것이 맞추어집니다. 분명히 이렇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초점에는 사람에 대한 용서와 이해와 자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예배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상상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나의 옆 사람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과 같습니다. 나의 아내와 자식, 남편 그리고 나의 옆 사람들에 대한 자비와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옆의 사람들과 관계가 나의 뜻대로 되지 아니할 때에, 사랑이 없을 때에, 하나님에게 위선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괴롭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의 실력입니다.
한국의 김인식 야구 감독은 아주 유명합니다. 그는 선수마다 맞춤형 코치를 합니다. 그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선수를 자신의 눈 높이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코치가 선수의 눈 높이에 맞춥니다. 사랑은 나의 눈 높이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눈 높이입니다. 내가 너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너와 나와 같이 되라는 것은 강요된 사랑입니다.
(요일 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v.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우리들이 진정한 예배를 드리려면, 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감정과 태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옆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예배가 됩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순절 기간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예수님께서 이 사랑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셨으며 우리는 예수님처럼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야할 것을 다시금 깨닫게됩니다. 사랑의 또다른 이름은 칭찬,겸손,관용,긍휼이 아닐런가 생각됩니다.
늘 말씀에 감동과 은혜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