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7장 의심

주님은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합니다.  주님은 태양과 같이, 빛과 같이 변형하셨습니다.  주님의 얼굴이 like the sun, 주님의 옷은 as the light와 같이 변형, Transfigured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형은 인간에서 하나님으로, 나사렛의 예수에서 하나님의 아들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변화가 무엇입니까?  예수님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초막을 3 채나 짓자고 합니다.  베드로는 모세와 엘리야를 주님과 동급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비극이고 우리의 비극입니다.

베드로는 16장에서 주님을 입술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고 17장에서 주님의 변화를 눈으로 봤지만 그의 마음에 아직도 주님에 대한 의심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초막 3을 짓겠다고 합니다.

그 의심의 증거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의 얼굴은 태양과 같았습니다.  Like the sun입니다. 그의 옷은 As white as light. 옷이 희어졌는데 빛과 같습니다.  이러한 주님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산 아래에 도착했을 때에 한 사람이 자신의 아들의 간질병을 고쳐 달라고 합니다.  

본문의 간질은 Hella로 Selenazomai입니다. Selenazomai는 Selene 달 Moon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영어 번역은 달과 관련된 Lunatick 또는 Epileptic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어떤 영어번역은 간질을 Moonstruck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것도 달, Moon과 연관성을 나타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달은 부정적 상징, 태양은 긍정적 상징으로 생각했습니다.  간질은 달의 악한 영적 기운이 나타나고 그 달의 기운에 매를 맞는 사람에게 광적현상이 나타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간질은 // Moonstruck, 달에 매를 맞는 자, Lunatick, 달에 영향을 받는 자가 됩니다.

주님은 변화산에서 태양과 같이 변화하셨지만, 제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빛으로 달의 어두움과 영향력을 제거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간질병, 당시에는 귀신들린 자를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달이 태양을 이기고 있습니다.  당시에 달이 태양을 이기는 것을 일식이라고 했습니다.  일식은 달이 태양을 잡아 먹기에 매우 두려운 현상이였습니다.

간질병 환자는 어린 아이입니다.  이 아이는 육체적 질병에 걸렸을 뿐입니다.  정말로 간질병에 걸린자들은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불안하며 주님의 능력을 의심을 할 때에 태양이 달에 잡혀 먹는 일식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간질이 제자들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은 매우 어두워졌습니다.

Greek 신화에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아내 유리디체가 뱀에 물려 죽자 죽음의 나라의 왕 플루토(Pluto)을 찾아가 자신의 아내 유리디체를 세상에 돌려보내 달라고 합니다.  죽음의 왕 플루토는 다음과 같은 // 조건을 요구합니다.

유리디체를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그런데 이곳을 출발하여 흑암을 지나 지상의 광명을 볼 때까지 결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유리디체는 언제나 너의 뒤를 달려가고 있으니, 너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합니다.

오르페우스는 아내와 함께 죽음에서 생명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르페우스의 마음에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달이 태양을 잡아 먹습니다.  일식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리디체가 정말 자기를 따라오고 있을까?  플루토 왕이 거짓말을 했거나 자기를 놀리는 것이 아닐까?  죽은 사람이 정말 다시 살아나서 자기를 따라 올 수 있을까?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의 마음을 불신으로 정복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광명의 세상에 도착하기 직전에 뒤를 돌아보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자기 뒤를 열심히 따라오고 있는 자신의 아내 유리디체를 발견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플루토의 말대로 유리디체는 다시 죽음의 나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의심의 결과입니다. 의심의 결과는 태양이 달에 잡혀 먹는 일식입니다.  영원한 죽음입니다.

우리의 의심은 오르페우스처럼 의심은 또 하나의 불신을 만들게 됩니다.  태양의 빛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이 사라집니다.   일식은 일시적 현상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태양이 빛을회복합니다.

그러나 그 일식의 시간에 모든 것을 빼앗깁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의심이 사라지면, (v.20)의 말씀대로,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게 합니다.  

의심이 없는 믿음으로 빛의 생활, 생명력 있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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