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매우 철학적인 질문 같지만 우리들이 나 자신에게 매일 질문하게 됩니다. 내가 나를 모릅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러한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왔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심리학자 Carl Jung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파괴적으로 된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어도, 내가 나를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정신 세계는 파괴되는 중이라고 합니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하면 성공하는 것 같지만 실패중입니다. 실패하는 것 같지만, 성공하는 것을 모릅니다.
Carl Jung은 사람이 자신을 아는 것은 신 하나님에게 소속감을 가질 때에 자신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기에 누구보다고 사람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럼으로 그 하나님을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과 직결됩니다.
(v.13)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냐 하느냐고 질문하십니다. 너희들이 나를 알고 있느냐 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알고 있습니까? 실제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실체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비실체를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v.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주님이 이 대답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v.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교육을 시킨 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알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고 합니다. 아주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지식과 노력과 의지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v.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이 알게 하시는 것을 근거로 우리를 교회로 세우십니다. 우리들이 교회입니다. 내 자신이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는 교회가 내 자신입니다.
(v.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베드로가 천국 열쇠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천국의 열쇠를 갖고 있다는 이 말씀에 확신을 갖고 있습니까?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절대로 알지 못합니다. 우리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보면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현대의 정신치유는 그 인간을 칭찬하고 격려하라고 합니다. Positive thinking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죄성은 그 거울의 사람에게 비방합니다. 나 자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비하와 조롱과 무시는 타인에게 그대로 연결됩니다. 다른 사람과 아주 불편한 관계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자신이 희생당한다고 억울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공격적으로 변화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에 사람은 자신에 주어진 교회의 열쇠를 자신을, 교회를 파괴하는 것에 사용합니다.
우리는 (v.16)을 베드로의 고백이라고 합니다. Confession은 신학적 고백입니다. 교회와 신자는 자신의 신앙을 신학적으로 고백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알게 되면 반드시 신학적 성찰, 고백의 의 과정을 갖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주요한 기독교 교단들은 신학적 고백을 갖습니다. 이단은 신학적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하겠습니다) 교회는 Confessional church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이 교회이기에 자신을 신앙을 성찰하여 고백을 만드시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