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어 계속합니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우상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한 현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가보시면, 이스라엘은 지형적으로 매우 독특합니다. 유대지역, 예루살렘은 높은 산악지역입니다. 유대 광야는 사막에 가깝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우상의 조형물이 고고학적으로 발굴되는 것이 매우 적습니다.
그러나 교통의 통로가 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북 이스라엘의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우상의 조형물이 발굴됩니다. 북 이스라엘은 우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리적 경제적 이유가 매우 높습니다. 풍부한 농산물 지역이고, 교통의 요지입니다.
그러나 유대지역은 북 이스라엘과 같은 경제적 사회적 장점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이스라엘의 12 지파 중에 오로지 하나 남은 것이 유대지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오늘 날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유대지파만 살아남은 이유도 지리적 장점입니다. 높은 지역이고, 적들이 굳이 이 지역을 정복해서 남쪽 이집트나 북쪽 레바논으로 지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남과 북을 연결하는 왕의 도로(King’s road)나 해변 도로에서 유대지역은 가운데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유대인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이들의 우상은 하나님과 우상을 합성화 시킨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우상으로 착각하고 우상을 하나님으로 착각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북쪽 이스라엘에게도 그대로 전파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에 한 번 정도는 예루살렘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성경의 우상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우상도 있지만, 하나님을 우상으로 우상을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상숭배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현상에 얼마든지 노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우상화 할 수 있고 우상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고전 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신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Hella 원문의 의미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사물, 물건도 아닌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영어번역은 Nothing입니다. 바울은 우상을 철저하게 부정합니다.
그러나 (고전 12:2-3) 이렇게 우상을 정의합니다. (v.2-3)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v.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바울은 우리는 예수님을 주라고 하는 것처럼, 너희들은 바알을 우상을 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주: 어제 제가 바알을 주로 해석한 것을 기억하면 이해하기 편합니다.) 바울은 비교법으로 설명합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주라고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우상 // 바알이 이끄는대로 살았다는 것은 악한 영의 역사입니다. 더러운 영의 역사가 우상에게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다음과 같이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우상은 Nothing이지만, 아무것도 아니지만 악한 영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우상을 두려워 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우상을 선택하면 우상에 숨어 있는 악한 영의 역사가, 사탄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럼으로 고전 8장을 깊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로 교회의 분열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고전 8:10-13)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v.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v.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v.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위의 구절을 깊이 읽으셔야합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우상은 종교적 신념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겠다는 것은 좋은 믿음입니다. 좋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이 우리의 우상이 됩니다. 그 신념으로 믿음이 약한자가 멸망을 당합니다. 형제에게 죄를 짓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은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지만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우리의 우상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갖게 되는 종교적 신념입니다. 이러한 우상 숭배로 한국 교회는 사회에서 버림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열심은 너무나 좋은 것 같은데 그 좋은 것은 우리의 자랑과 종교적 만족입니다. 종교가 Ghetto화 됐습니다. 나의 신념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타인이 이해 할 수 없는 종교는 종교의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단군상이나 깨버리고, 타종교의 우상을 우상이라고 하면서 우리안에 우상은 그대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신앙으로 착각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무식하게 이러한 것을 방관하며 신학적으로 설교 할 줄도 모릅니다.
우리의 사회적 행동이 세상에 지탄받는 것이 바로 믿음이 없는 자를 망하게 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는 것을 전혀 모릅니다.
우상숭배의 특징은 무지입니다. 무식입니다. 무당은 무지하기에 신학이 없습니다. 자신의 종교에 무지하면 뜻도 알지 못하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영적, 영성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이 단어를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열정에 사용합니다. 이 단어를 사용하면 모든 사람들은 대응을 할 줄도 모릅니다.
그가 정신적으로 착각해서 영성, 영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 정말로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영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 구분조차 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영적. 영성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를 전혀 알지 못하고 무당이 사용하듯 사용합니다.
한국교회, 이민 교회의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구분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개혁자들이 종교개혁에서 Catholic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 바로 일반은총의 배제입니다. Catholic은 교회와 신부를 초월적 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특별 은총만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종교 개혁가들은 이것을 개혁했습니다.
문제는 한국 교회는 이러한 개혁의 정신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오히려 Catholic 교회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목회자와 교회와 교인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구원의 은혜로 특별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법적 질서와 의무를 다하는 하나님 일반 은총의 시민입니다.
하나님은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하나님입니다. 오늘도 역사와 시간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사회와 정치와 경제에서 배제하는 것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일반적 은총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대화적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의 교회와 신자는 이 세상의 역사를 사탄의 역사, 죄악의 역사 심판의 역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결과입니다.
우상은 우리의 가까이 있습니다. 깨어서 신앙 생활하시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