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는 구약 마지막 성경입니다. 말라기의 의미는 히브리어의 Malak은 왕, 대변인, 사자를 의미합니다. 말라기는 하나님의 대리인입니다. 성경은 이 사람의 신상에 대해서 전혀 알려주지 않습니다.
성경 학자들은 성경의 배경을 바벨론 포로 귀환해서 성전을 완공한 후로 봅니다. 신약 성경이 나오기 전, 마지막 하나님의 음성으로 이해합니다. 그 결과 성경의 마지막에 위치합니다.
유대인들은 70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됐습니다. 성전을 다시 지었습니다. 구약의 예언서를 보면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성전을 다시 짓고 난 후에 그들에게 승리와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실질적 변화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페르시아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유대는 페르시아 이후 그리스의 알렉산더, 로마에 의해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랑하셨다면 현실적 증거가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현실의 변화가 없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신앙 생활은 형식적이고 타락한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말 1:2-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v.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하나님은 야곱의 형 에서는 미워하셨고 야곱은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사랑의 증거는 너가 나를 사랑한다면 대가를 치르라고 합니다. 부모들이 자식을 헌신적으로 희생하기에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을 인지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희생적 사랑에 익숙합니다. 사랑한다며 누군가 사랑의 증거를 보여주어 우리는 사랑 받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은 자식에게는 매를 들고 잔소리하고 심지어는 집에서 내어 쫓아내기도 합니다. 어떤 자식은 자신의 부모가 아니라 계모와 계부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철없는 자식은 가출도 합니다. 자신이 남의 집 자식보다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자식답게 키우는 것 후자의 사랑입니다. 전자의 사랑은 자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셨습니다. 이 두 사람이 뱃속에 있을 이미 이렇게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선택과 은혜가 야곱이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주어졌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시대의 야곱의 후손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은혜를 받은 백성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현실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부모가 아니라 계모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는 하나님의 특별 은총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만족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에게 콩쥐의 계모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모든 사람에게 일반 은총을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건강, 지식, 물질, 재능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수고와 노력에 의하여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정한 경쟁이고, 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들이 특별 은총을 받았기에 하나님에게 일반 은총까지도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못하는 자식이 부모에게 공부를 잘하게 해 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공부는 학생의 노력과 수고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것을 요구하는 자식은 한심한 자식입니다.
오늘 날 야곱의 후손, 우리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특별 은총,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현실적으로 사랑의 증거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은 우리 자식들이 매일 놀면서 우리에게 공부 잘 하게 해 달라는 것과 같다는 것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좋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