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신분을 우리의 직업이나, 민족이나, 국가로 이해합니다. 저의 경우는 저를 목회자로, Korean-American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신분을 부여합니다.
(v.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누군가 예수님의 제자를 영접하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신분을 각성시키는 이유는 11장부터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는 길로 가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을 대신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무지한 갈릴리의 어부들입니다.
제자들을 전통적 유대의 랍비와 비교해보면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랍비로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유대의 랍비처럼 복음을 전하려면 너희 자신을 보지 말고 내가 너희와 함께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도 세상의 가치와 자격과 조건에 비교해보면 우리는 부끄러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제가 이미 마태복음 10장을 설명 드린 대로 오늘 본문을 연결 해석하면 세상은 결코 우리를 결코 영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리 가운데 가는 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제자들에게는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또한 우리들이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와 사신과 향기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신분이 있습니다. 사람은 신분에 따라 행동하고 변화해야합니다. 그래야 신분이 유지됩니다. 저의 세상의 신분에 맞게 제가 행동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주신 신분에 따라 행동하며 살아야 합니다.
(v.41-42)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v.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들이 우리의 신분에 따르는 행동을 하면 우리를 영접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상을 주십니다.
오늘 날의 우리는 신분으로 영접을 받으려고 합니다. 목사의 착각은 목사의 신분으로 영접을 받으려고 합니다. 신자들의 오해는 교인이기에 세상에서 영접을 받으려고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신분으로 절대로 영접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예수님의 신분대로 살아야 영접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와 사신으로 이 세상에서 영접 받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