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가장 난해한 부분입니다. 성경 해석의 차이로 교회에게 많은 갈등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다니엘서는 구약의 요한 계시록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주님이 오시기전 약 4-500년 전에 쓰인 것으로 추측합니다. 다니엘 9장과 12장은 인류의 마지막에 대한 구체적 시간표를 제시한 말씀입니다.
다음과 같이 일반적으로 이해합니다. (단 9:24-a)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다고 합니다. 이레는 7년으로 계산을 합니다. 70이레는 70 X 7= 490년이 됩니다. 이 계산의 시작은 바빌론에게 파괴된 예루살렘성이 다시 중건이 시작 될 때부터 490년째에 세상의 마지막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v.25-a)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두 가지 사건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예루살렘이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간이 7 이레입니다. 중건의 기간 7 X 7= 49년째에 파괴된 예루살렘 성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하여 중건됩니다.
두 번째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왕으로 나타나는 사건은 62 이레입니다. (v.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우리는 기름 부은 자가 끊어져 없어지기에 정확한 해석은 메시야가 이 땅에서 없다는 의미입니다. 단 한 분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이 땅에는 메시야가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62 이레입니다.
62 X 7= 434년입니다. 이 계산은 예수님의 출생과 승천을 포함합니다. 그러면 434년째에 예수님의 승천은 어떻게 증명합니까? (v.26-b)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왕을 AD 70년의 로마의 Titus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파괴로 이해합니다. Titus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아니하고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그는 AD 79년에 로마의 황제로 등극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멸망까지 69 이레가 지나갔습니다. 70 이레에서 1 이레만 남습니다. 1 이레는 7 년입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님은 오시지 아니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합니까? 이것 때문에 수많은 논쟁이 있고 수많은 이단이 나타납니다.
숫자대로 해석 한다면, 예수님이 이미 왔어야 합니다. 7년이기에 예수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의미적으로 해석한다면 7년은 베드로의 말처럼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천년 같다는 의미로 해석해야합니다. 그러나 이 해석도 왜 69 이레는 정확하게 계산하면서 7면만 다르게 해석을 하느냐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둘다 해석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문제는 마지막 7년을 이단에서는 공포와 죽음과 심판의 시간으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잘못된 해석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마지막은 우리에게는 소망과 은혜의 시간입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오시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 날을 저주와 죽음의 날로 협박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심판과 죽음입니다. 교묘한 사단은 믿는 자들을 현혹시켜 마지막에 우리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동일한 대접을 받을 것 처럼 공갈 협박을 합니다.
우리에게는 소망과 기쁨이 됨을 다니엘 12장에 잘 나타납니다.
(단 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큰 환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졌고 구원의 약속에 있습니다. 믿는 자로 우리의 마지막을 두려움과 공포로 지낸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습니다.
(롬 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의 마지막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합니다. 저는 교회 안에서 종말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많은 비극을 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갖고 있기에 세상에서 오늘의 고난은 당연합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찾아 올 때에는 고난과 눈물이 끝납니다. 영광과 승리가 우리를 기디립니다.
마지막 시간적 계산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알 수 없다고하신 마지막 때를 계산하는 사악한 인간들에게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시악한 인간들의 특징은 오늘 나의 십자가 없습니다. 오늘의 고난 없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축복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내일의 저주와 심판을 말합니다. 성경을 반대로 해석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마지막 때까지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도 아주 중요하게 다룹니다. 오늘 우리의 십자가, 나의 십자가로 하루를 살면서 다가올 승리와 영광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