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4장 – 0.01%와 100%는 같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이스라엘의 원수 니느웨에 가서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라고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을 갑니다.  풍랑을 만나서 바다에 던져 집니다.  바다의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간 요나는 하나님게 회개를 하며 살려주시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가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물고기 입에서 토해 냅니다.

니느웨가 철저한 회개를 합니다.  니느웨는 요나에게 이스라엘의 원수가 되기에 처벌의 대상이지, 용서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에게 요나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v.3)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나의 원수를 용서 할 바에는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 합니다.  우리는 원수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며 억울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원수 때문에 마음을 달래려고 하나님을 믿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원수는 하나님에게 벌도 받지 않고 너무나 잘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나의 원수에게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원수 때문에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의 원수가 저렇게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낫습니다.  나의 원수는 나를 무능하게, 나의 시간과 마음과 물질을 지금도 빼앗아 갑니다.  한 번 원수는 평생 원수가 됩니다.  나의 원수는 누가 갚아줍니까?  

그러나 나의 원수는 나에게 100% 잘못했지만, 나는 나의 원수에게 100% 잘했습니까?  나도 나의 원수에게 어느 정도 잘못했지만 나의 원수가 나에게 잘못한 것과 비교 할 것이 못 된다고 합니다.  그는 나에게 100% 잘못했지만 나는 1%, 잘못했다고 합니다.    

순금의 정도를 표시를 99.9%라고 합니다.  순금은 100%라고 표시를 할 수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100%의 순금을 만들어낼 기술이 없습니다. 0.01%의 이물질은 항상 존재합니다.  이것이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0.01%도 죄인이고, 100% 죄도 죄인입니다.  너와 나의 죄를 비교하면 나는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0.01%든지 1% 이든지 죄인입니다.  죄는 죄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까마귀가 노는 곳에 백로가 가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백로는 의인이고 까마귀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틀린 것입니다.  백로의 깃털에서도 하나 정도는 까만 색갈입니다.  우리 눈에는 백로이지만, 하나님에게는 까마귀와 같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용서하라고 명령 하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죄가 하나님에게 용서 됩니다.  나는 백로고 나의 원수는 까마귀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까마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까마귀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백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는 것에는 감사합니다.  마치 요나에게 더위를 피해 박 넝쿨을 준비해주십니다.  그러나 이 박넝쿨이 시들어 죽자 요나는 또 한 번 하나님에게 사는 것 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하룻밤에 피고 지는 박 넝쿨을 그렇게 아낀다면 내가 니느웨의 사람들을 아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요나에게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원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사랑과 용서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원수는 미움과 증오의 대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특권이 무엇입니까?  선택입니다.  그 선택에 따라 행복과 불행, 자유와 노예로 갈라집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입니다.  나를 이겨내는 선택은 행복과 자유입니다.  나를 이겨내지 못하는 선택은 불행과 노예입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이 선택을 하지 못하는 인간은 불행과 노예로 살아갈 자격을 얻습니다.

까마귀에서 백로가 되는 선택은 어렵습니다.  까마귀에서 까마귀로 사는 것은 쉽습니다.  오늘도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시고, 나의 선택을 원망하시기 바랍니다.  0.01%나 100%는 똑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미련함을 스스로 책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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