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1-9 (종교와 신앙 사이에서-율법과 자비 사이에서_

종교적으로 유대인이 되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유대교를 믿겠다고 선언하고 안식일을 지키면 유대인으로 취급합니다. 유대인이지만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면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것이 종교적 구분입니다.

유대인들은 정체성은 안식일의 준수에서 나옵니다. 그 안식일을 지키는 수준에 따라 그들의 신앙의 척도를 판단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을마다 안식일에 벗어 날 수 없는 지계표를 설정했습니다. 그 지계표를 벗어나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됩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서 배가 고파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배가 고팠다는 Hella의 의미는 꼬집혀서 아픈 것처럼 아주 배가 고팠습니다. 제자들도 너무나 배가 고파 이삭을 잘라먹으면 율법을 어긴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이삭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허락하신 것이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안식일에 노동을 했다고 비난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4 계명을 범했다고 비난 합니다. 예수님이 다음과 같은 예를 듭니다.

(v.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v.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율법에 따라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떡을 다윗과 다윗의 사람들이 먹었다면 다윗이 잘했다는 것입니까? 잘못 했다는 것입니까? 배가 고픈 자에게 거룩한 떡을 주는 것이 당연하지만 율법을 어긴 것은 잘못 한 것입니다.

거룩한 떡은 율법에 따라 일반 사람들이 먹어서는 안 됩니다. 대제사장은 거룩한 떡을 다윗과 다윗의 동료들에게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러한 예를 말씀하십니까?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먹은 것은 잘못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주어서는 안 될 떡을 주었고 다윗도 먹어서는 안 될 떡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 배고픔, 삶의 환경과 여건에 대하여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룩한 빵을 우리들이 먹을 수는 없습니다. 안식일에 율법을 범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러한 예를 들어서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다윗에게 끝까지 자비하셨습니다. 그가 율법을 범하고 떡을 먹었지만, 하나님은 다윗에게 끝까지 자비하셧습니다.

다윗은 그 떡을 먹고 블레셋에 항복해서 미친개처럼 살아도 하나님은 다윗에게 끝까지 자비하셨기에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율법보다 높은 하나님의 자비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안식일을, 주일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의 자비를 나타내십니다.

(v.6-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v.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v.8) 인자는 //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지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십니다.

오늘도 수많은 신자들이 종교로 살아갑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돌을 던집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려고 형제들을 비난하고 조롱합니다. 그들은 종교인입니다.

예수를 믿는 신앙인들은 자비합니다. 종교가 아닌 신앙으로 사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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