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 31-43절 (천국과 지옥의 증명)

사람들은 우리에게 천국과 지옥을 증명해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천국과 지옥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신자들도 천국과 지옥을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증명을 위해서 예수님은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비유로 창세로 부터 감추인 것을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마 13:31-33)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v.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v.33)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많은 교인들이나 목회자는 예수님이 비유로 복음을 쉽게 설명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약간 무식한 소리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은 헬라어 (그리스어)로 쓰여있고, 그리스 철학의 영향에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당시의 비유라는 것은 어떠한 진리를 설명하는 체계입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철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닙니다.  적어도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 그리고 자연과 자신의 관계, 더 나아가서 죽음 이후에 대하여 생각하는 자들이 철학을 했습니다.  이러한 추상적 세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니 비유가 나타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비유를 사용하는 이유는 고급한 하나님의 진리, 신비한 하나님의 세계, 죽음 이후에 대한 진리이기에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설명과 해석이 목적이지만 근본적 목적은 이러한 비유를 듣는 사람들이 고급한 진리와 자신에 대한 성찰이 있다는 것을 근본으로 합니다.

오늘 날 한국 교회는 이러한 복음, 진리를, 시장 마당에서 파는 싸구려로 전락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든지 듣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대한 이해와 배경을 모르는 목회자는 천국과 지옥은 절대로 전달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 하실 때에는 우리들이 이러한 말씀을 들을 자격이 있는 가를 반성해야합니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견유학파입니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을 찾아 왔을 때에 자신 앞에 비추는 햇빗을 가리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알렉산더는 세상을 정복하지만 빛을 가리우는 자입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알렉산더가 디오게네스와 같이 되고 싶다고 하지 디오게네스는 자신은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디오네게스의 말을 들은 알렉산더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합니다.  그는 자신의 무지를 압니다.  역설적이지만 자신의 무지를 아는 자는 철학을 알 자격이 있습니다.  알랙산더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의 제자가 될 수 없음을 한탄합니다.  이것이 철학의 시작입니다.

복음의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천국과 지옥은 증명하고 설명하는 성질의 복음이 아닙니다.  천국은 적어도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고, 스스로 눈물 흘려보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만물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반성하는 자가 들어야 할 복음입니다.  자신의 무지와 죄악을 한탄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진주입니다.

예수 믿고 천당가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싸구려로 만드는 것은 목사의 잘못이요, 싸구려 인생을 살면서 천국을 가겠다는 신자는 양심 불량입니다.  이것은 돼지 같은 인생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알고 싶으세요?  밤 하늘의 별을 보고 반성하세요.  오늘도 피는 꽃을 보고, 자신의 더러움을 발견해야합니다.

그러면 천국과 지옥은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천국과 지옥은 얼마든지 증명이 됩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