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 53-58 (선지자가 고향에서-개인에서 우주까지)

예수님의 유명한 고백입니다.  선지자가 고향과 자기 집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고향과 자기 집에서 능력을 나타내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왜 고향과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인정해도 고향 사람과 가족들은 인정하지 못합니다.

일반 사람은 3개의 시각으로, 우리는 4개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가장 기본적 시각은 주관적 시각입니다.  나의 입장에서, 나의 지식에서 나의 경험으로 세상과 사람을 이해합니다.  이기적이기에 갈등과 다툼을 유발합니다.

이러한 주관적 시각에서 성숙하면 객관적 시각을 갖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건과 사람을 이해합니다.  이기적 태도에서 벗어나 이타적 시각입니다.  나의 지식 경험보다 상대방의 지식과 경험을 인정합니다.  사랑과 이해와 용서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성숙하면 공동체적 시각이 나타납니다.  사회와 국가의 시각을 갖습니다.  공동체적 시각입니다.  예수님이 고향과 자기 집이라 고 합니다.  이것은 공동체입니다.  가족도 고향도 공동체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희생과 애국지사들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더 성숙하면 우주만물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창세기에서 시작하고 요한계시록으로 마치는 것은 이라한 시각을 갖을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시각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입니다.

4번째 시각을 제외한 3개의 시각은 잘못 볼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습니다.  3번째 공동체 시각에도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 위험성은 편견입니다.

예수님의 고향과 마을은 예수님에 대한 공동체 시각이 있습니다.  요셉의 아들, 목수, 그에게 동생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공동체가 갖고 있는 사실적 시각입니다.  맞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공동체의 시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러한 편견을 부정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힘이 필요합니다.

공동체 사람들은 이러한 힘과 시간의 소진을 알기에 편견에 쉽게 머물게 됩니다.  개인의 의지보다 공동체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들어나는 것이 2차 세계 대전 때에 독일의 유대인 학살과 일제의 관동지진 때에 한국민 학살입니다.  또한 오늘 날에는 우리가 사는 미국의 양당정치입니다.  공화당원은 무조건 공화당 정책을 지지합니다.  민주당은 공화당에 무조건 반대합니다.

신앙이 성숙하면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각에는 언제나 함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우리들이 우주적 시각, 하나님의 시각을 가질 때에 아래의 3개에서 올바른 시각을 갖습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