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장 23-32 (권위의 근거)

이 시대를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는 다원화시대라고 합니다. 다원화라는 것은 힘의 분산을 의미합니다. 힘이 분산되고, 다각화되면 권위는 부정되거나 약화 됩니다.

이렇게 다원화되는 근본적 이유는 절대가치의 약화입니다. 모든 것이 상대화되면서 자연적으로 권위는 약화됩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입니다. 무슨 권위로 성전을 정결하게 하느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를 설명하기 위하여, 세례 요한과 포도원의 두 아들을 예를 듭니다.

세례요한의 권위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백성들은 그를 선지자라고 합니다. 백성들은 세례요한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권위라고 믿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세례요한의 행동과 언행을 보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권위로 인정합니다.

세례요한의 권위는 상대적입니다. 그 이유는 세례요한은 분봉왕 헤롯에 의하여 참수형을 당합니다. 백성들은 그가 죽는 것을 보고, 반발하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아무런 사건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상대적 권위입니다. 사람에 의하여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포도원의 두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입니다. 두 아들의 행동에 의하여 아버지의 권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포도원에 가는 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그 명령을 거부하는 아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권위는 절대적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권위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우리들의 행동에 따라 인정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권위자이십니다. 우리는 그 권위를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도 세례요한과 같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위가 절대적이라는 것은 그의 죽음 이후에 일어나는 부활과 성령의 임재입니다. 이것이 세례요한과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십니다.

권위는 보호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 보호아래에서, 권위에 있습니다. 이러한 절대적 권위와 보호로 우리는 구원과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보전하십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의 모든 순간마다 함께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권위에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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