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장 33-42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가?)

날이 매우 덥습니다. 시원한 음식들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시원한 음식들은 몸에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중국음식에는 찬 음식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찬물을 마구 마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우면 시원하고 찬 것을 좋아합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마태복음은 10장 이전에는 우리에게 매우 시원한 내용들입니다. 기적과 능력과 예수님의 도우심이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12장부터는 하나님의 심판과 질책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시원하게 한 것이 아니라 답답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지만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양면성을 상실하면 우리의 신앙은 아주 잘못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의 우상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저 축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하면 기독교는 이 세상과 분리되는 극단적 행동을 합니다. 이 세상을 죄악시하고 저주합니다. 극도의 도덕적 신앙을 요구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양면성을 우리는 나타낼 수 없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칩니다. 또한 우리자신이 이러한 양면성을 지니고 신앙생활하면 우리 자신도 많은 혼란에 빠집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양면성으로 인한 혼란이 나타나고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납니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울타리를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 열매 거둘 때에 종들을 보내어 세를 받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종들을 심히 때리거나 죽이고, 또는 돌로 쳐서 죽입니다. 농부들은 똑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결국에는 포도원 주인의 아들도 죽입니다.

농부들이 이러한 행동하는 이유는 당시 포도원 주인들은 로마의 장군이나 귀족입니다. 그들은 항상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타국에 갔다는 것이 전쟁터를 의미합니다. 많은 경우에 주인이 전쟁터에서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포도원을 상속 받을 아들이나 종들이 없으면 그 포도원은 농부들의 것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2 가지의 신앙의 태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을 믿는 자들과 예수님이 재림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라고 하는 자들은 항상 신앙의 공포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수많은 거짓 예언자들입니다. 다미 선교회와 Dr. Camping처럼 특정한 때를 정해서 말합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이 오시지 아니할 것처럼 삽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오시지 아니했기에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에 경각심과 두려움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이러한 양면성을 동시적으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자치 잘못하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칩니다. 그 결과 오늘 날 많은 성도들이 신앙에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정상적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을 얼마나 고백하며 사는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하루 이틀의 신앙으로 되지 않습니다. 지루하고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더운데 시원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모습과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지루하고 답이 없는 것 같고 많은 고민을 동반하는 것이 정상적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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