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14-20절 (쌍놈에서 의인으로)

이스라엘에 가보면 농사지을 곳도 많고, 목축도 가능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농업이 이스라엘의 주요 산업이었을 것입니다. 갈릴리도 농사짓는 지역이기에 농부들이 많습니다. 주님은 농부보다 어부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부로 구성을 했습니까? 당시의 어부는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직업이 됩니다.

(v.16-17)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v.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시니.

갈릴리 지역은 비옥한 땅이지만 갈릴리 사람들은 대부분 소작농들입니다. 지주들은 남쪽 유대 사람들입니다. 농부들은 지주들에게 소작료와 로마정부에 세금을 지불해야했습니다. 그러기에 갈릴리 사람들은 여러 차례 지주의 횡포와 로마의 세금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을 Am-Ha-Aretz (암하 하레츠) 땅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나중에 욕이 됩니다. 쌍놈이라는 말로 전락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거칠기에 쌍놈이 됩니다.

쌍놈보다 더 거친 쌍놈들이 있습니다. 어부들입니다. 어부는 땅을 빼앗긴 농부들의 최후의 직업 이였습니다. 땅은 임자가 있지만 물고기는 임자가 없습니다.

당시에 노동자는 1 데나리온으로 하루를 먹고 살았습니다. 어부들의 1년 평균 수입은 200 데나리온입니다. 수학적으로 그들은 일 년에 150일을 배고프게 지내야했습니다. 어부들은 거칠고 폐쇄적이고 반항적이고 폭력적이였습니다. 그럼으로 갈릴리의 농부들이 쌍놈이라면 어부들은 쌍놈중의 쌍놈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쌍놈들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로 응답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쌍놈들을 데리고 이 땅에 메시야 왕국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의도는 불순했습니다. 자신들의 가난과 어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예수를 선택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 전까지 누가 영의정 좌의정 할 것인가를 갖고 다투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강 할 때에, 높을 때에, 영광의 존재가 되면 예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무능력하고, 낮아지고, 가난하고, 병들고 , 깨어지면 하나님의 힘을 간구 합니다. 우리에게 힘이 없을 때에 또 다른 힘을 간구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은 제자들과 같이 악하고 불순한 의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와 아픔을 해결해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끌고 가시는 신앙의 목표는, 쌍놈을 의인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쌍놈을 건강한자로 부유한자로, 출세하는 자로 만드시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들이 최선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변화시켜 쌍놈에서 사도로 만든 것 같이 예수님은 우리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만드십니다.  쌍놈에서 의인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추신: 아침 부터 쌍놈이라고 해서 기분 나빠 할 것이 없습니다. 깊이 생각하면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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