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9-13절 (혼란스러운 하나님)

어린 아이들이 가장 혼란스러운 것이 부모님의 손입니다. 그 손으로 사랑한다고 밥도 먹여주고, 쓰다듬어 줍니다. 그 손으로 아이의 손을 꼭 잡아줍니다. 그러나 그 손으로 아이를 야단칩니다. 때립니다. 그 손으로 아이에게 응징을 합니다. 그러면 그 손은 아이의 입장에서 매우 혼란스러운 손이 됩니다.

본문의 하나님의 손이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라고 합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나타납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한다고 하십니다.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됐습니다.

가난한 목수 예수가 세상의 구세주가 됐습니다. 나사렛 예수에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극대화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v.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하나님의 영,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었습니다. 사탄의 시험을 받게 합니다. 들짐승과 함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때립니다.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몰아내었다 영어번역은 Immediately The Spirit impelled Him입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성령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집어던졌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의 좋은 시간을, 행복한 순간을, 기쁨의 날을 한 순간에 박살을 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도 주시지만 오래 가지 않게 하십니다. 끝없는 고민과 어려움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내몰아 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인지 분노의 하나님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혼란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광야 40일은 우리의 일상의 삶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은 매우 혼란스럽게 나타납니다. 너무 당연합니다. 그 증거가 다음과 같습니다.

(v.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3가지의 사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둘째는 들짐승과 함께 계시고 셋째는 천사들이 수종을 들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도 광야 같은 인생에서 수많은 사탄의 시험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환경의 어려움입니다. 둘째는 우리에게는 짐승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려운 인간관계입니다. 그러나 셋째는 우리에게는 천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손길을 보냅니다. 어려움을 당하지만 해결을 해주십니다. 악한 것을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것이 혼란스럽게 나타납니다. 끝임 없이 반복됩니다. 우리들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의 최후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죽음에서 부활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이라한 승리를 믿지 못하면 하나님은 변덕쟁이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매우 피곤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십자가의 최후의 승리를 믿으면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천사의 도움으로 이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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