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 복음 4장 1-20절 (우리들이 오해하는 예수님)

대강절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이 씨를 뿌립니다.  옥토에 뿌린 씨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가시밭, 돌밭, 길가에 뿌려진 씨앗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오늘 날 신자들은 우리들이 옥토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자고 합니다.  성장하자고 합니다.  전도와 선교로 세상을 구원하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신자들이 되자고 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왜 열매 맺지 못하는 가시밭, 돌잩, 길가에 씨앗을 뿌리시는 이유를 모릅니다.  예수님은 농부입니다.  많은 추수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미련하게 열매 맺지 못하는 가시밭에, 돌밭에, 길가에 씨를 뿌립니다.  옥토와 똑같이 뿌립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경제적 논리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경제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착각은 우리 자신이 돌밭이고, 가시밭이고, 길가의 사람인줄 모릅니다.  우리는 옥토라고 착각을 합니다.  우리들이 옥토라고 착각하는 이유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어떠한 사역을 크게하면 옥토로 착각합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아주 신선한 사역을 하면 옥토라고 착각을 합니다.  자신이 어떠한 선한 일을 하면 옥토라고 합니다.

그 결과 우리 자신을 옥토로 착각해서 열매에 맺는 것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면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에게 영광이라고 합니다.  맞는 것 같지만 틀리는 것입니다.  필요하지만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본질이 아닙니다.  비본질이 본질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본질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옥토에 씨만 뿌리지 않습니다.  가시밭길, 자갈밭, 길가에 씨를 뿌립니다.  매우 미련한 농부입니다.  열매 맺지 못할 곳에 씨를 뿌립니다.  씨를 낭비합니다. 허비합니다.  마구 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본질, 성경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가시밭 같은 우리에게 사랑의 씨를 뿌립니다.  오늘도 돌밭과 같은 우리에게 성령이 찾아오십니다.  오늘도 길가와 같은 우리를 하나님은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할 말은 많지만 이것으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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