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장 38-45 (기적의 독과 기적의 약)

독과 약은 동전의 앞과 뒤와 같습니다. 약은 유익하지만 그 약을 남용하면 독이 됩니다.  진통제는우리 몸의 진통을 없애지만 진통제를 과용하면 진통제에 중독됩니다.  모든 약을 과용하면 약이 아니라 독이 됩니다.

우리에게도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기적입니다.

(v.38)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주님에게 표적 보여 달라고 합니다.

어제 말씀에서 귀신이 들려서 눈멀고 벙어리 된 자의 귀신을 내어 쫓았습니다. 이때에 무리들이 이러한 주님의 기적을 보고 다윗의 자손 Messiah라고 하게 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다시 기적을 요구하자 주님은 (v.39-a)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악하고 음란하다고 하십니다.

성경을 잘 보시면 그들은 마태복음 시작부터 예수님의 계속되는 기적을 계속적으로 부정합니다. 그들은 계속되는 기적에도 그들은 변화하지 않습니다.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에 절대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주님은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십니다.

오늘 날 교회에도 기적에 중독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서 해결해주셔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을 충동질 하는 것이 목사들입니다.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라는 명목으로 끝없는 기적을 요구합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기적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어제 저는 제가 잘 알고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주변에도 이러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아있기에 기적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 친구는 기적이 없어서 죽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가 기적적으로 해결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표적, 기적 Hella로 Simeon – Sign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계속되는 기적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것에 만족해야합니다.

기독교가 기도로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면 불교에도 기도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독교가 기적의 종교라면 무당의 종교도와 같아집니다.

제가 기적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도 수많은 놀라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들은 신앙의 비밀로 간직해야합니다.  제가 믿음이 없을 때에, 부끄러운 자리에 있을 때에, 제가 어려움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은혜로 기적을 베푸십니다.  어떤 기적은 정말로 부끄러워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악하고 음란하다고 할 때에 음란은 Hella로 Moi-kalis입니다. 성적 타락을 의미합니다. Adulterous 간음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계속되는 기적의 요구는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배신하는 영적간음입니다.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의 기적에 만족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기적에 중독되면 나타나는 가장 큰 현상은 하나님의 말씀은 지루하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현실에 당장 도움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신앙이 충동적이고, 자극적이고, 광적인 현상을 갖게 됩니다.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한국교회는 기적을 강조하면서 기도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많은 간증도 합니다. 기도가 나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과 방법으로 전락을 했습니다. 성경의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과 찬양입니다. 성경의 일부분의 내용을 전체화하여 기도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작태는 버려야 합니다.

분명히 악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을 교인들에게 통성기도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하자는 목사의 작태를 보면 정말로 무섭습니다. 세상의 법과 질서를 초월하는 불법을 기도로 해결하는 것을 기적이라고 하면 하나님은 이 시대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희들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이라고 합니다. (v.40-4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을 지내고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한 것처럼 너희들도 나의 말을 듣고 회개해야한다고 하십니다. 만약에 너희들이 나의 말을 듣고 회개하지 않으면 니느웨 사람들이 너희를 정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말씀에 만족하지 못하면, 니느웨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조롱하고 심판합니다.

한국의 개신교가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취급을 받는가를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신뢰 할 수 없는 단체의 하나입니다. 니느웨, 세상이 우리를 정죄합니다.

천만이 안 되지만 약 2백만이 교회 나가지 않는 가나안 (안나가)신자, 약 2백만이 이단으로 나타나는 한국의 기독교입니다. 이러한 책임은 기도로 기적을 얻겠다고 가르친 목사들의 책임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 구원의 기적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추구하면 우리의 하나님은 우상이 됩니다.

기독교는 기적이 없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적은 불신자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들이 신자라면 오늘의 삶에 만족하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찬양과 신앙고백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깊은 하나님의 은총과 손길에 있음을 알고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임의기적이 우리에게 약이 되려면, 오늘의 구원에 감사하시고 기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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