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장 22-37 (우리의 선과 악)

우리들은 어떠한 일에 반응을 합니다. 우리의 일반적 반응은 우리에게 이익이 되면 선한 것이고 우리에게 불이익을 주면 악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러한 모습이 그대로 들어납니다.

사람들이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3가지 질병을 갖고 있습니다. 귀신들렸고,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됩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자 벙어리가 말을 하고 앞을 보게 됐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기적을 보고 2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합니다. 무리는 Hella로 Oklaso입니다. 그들은 법적 신분 보장을 받는 일반백성 Laos나 Demos가 아닙니다. 그들은 소작을 하다가 농지를 빼앗겼거나 남의 돈을 갚지 못한 빚진 자, 세상을 원망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자신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줄 혁명가로 봤습니다. 로마를 무너뜨리고 기존의 종교 계급 지주들을 타파합니다. 그러기에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바알세불 사탄의 도움으로 귀신을 쫓아냈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매우 껄끄러운 상대입니다. 예수님이 하층민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로 하층민 백성을 통제했지만, 예수님이 자신들의 이익과 권한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쫓아냈다고 합니다.

한 가지 현상을 놓고 한쪽은 다윗의 자손 선하다고 하고 다른 한 쪽은 바알세불 악하다 합니다.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선과 악이 갈라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v.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v.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아주 난해한 구절입니다. 주님에게 어떠한 잘못을 해도 용서 받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대한 모독은 절대로 용서 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너무나 표면적 해석입니다.

성령을 훼방은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성령 훼방은 불신자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불신자로 과거에 성령을 무시하거나 거절해도 성령 훼방 아닙니다. 그들이 회개 했다면 예수님은 그들을 용서하십니다. 성령 훼방은 신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거나 모욕하면 성령 훼방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기적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계시적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기적 귀신들리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앞을 보게 됐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제사장 바리세인들은 이것을 알면서도 거절하는 것이기에 성령 훼방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바알세불의 힘을 빌리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익에 따라 거짓으로 주님을 거부합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거절하는 것이 성령 훼방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선과 악을 새롭게 정리하십니다. 주님은 선과 악이 우리의 유익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선과 악은 우리 마음에 쌓아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려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의 유익에 따르는 선과 악이 아닙니다.  진정한 성령의 사람은 끝까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합니다.  절대적 절망이 있지만, 실패가 있지만, 인내하고 감사합니다.  그 절대적 절망과 실패의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인생의 해답을 얻습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성령 훼방은 이러한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부정합니다.

이러한 성령 훼방에서 벗어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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