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장 34절-15장 20절 (문화 전통과 기독교 )

모든 종교는 그 사회에서 문화로 나타납니다. 유럽, 남미, 이스라엘, 중동은 종교가 문화로 나타나는 대표적 지역들입니다. 그럼으로 종교는 경제, 정치, 교육, 인간의 행복 추구에서 강력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특히 기독교는 민주주의에 발달 과정에 깊은 영향을 줍니다. 예수님의 여자와 종과 다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신분이 지배하는 계급사회를 흔드는 강한 파괴력을 나타냅니다.

또한 아담 스미스가 오늘 날의 경제 체제에 대한 이론을 설정하지만, 막스베버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비교를 통해서 오늘 날의 경제체제가 왜 자본주의로 들어서게 됐는가를 잘 설명합니다.

우리는 종교가 문화로 나타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니이버는 종교가 문화로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를 잘 설명합니다.

종교와 세상은 밀착 할 수 있고, 종교는 세상을 거부 할 수 있고, 종교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중동의 국가들은 종교 지배사회입니다. 유럽은 기독교는 사라지고, 기독교 문화가 강하게 나타나는 사회입니다.

특히 종교 다원화 된 Post-modernism에서 한국의 기독교는 기독교적 특성과 가치가 세상에서 사회적으로 심한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미국을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국가라고 하는데 미국은 진정한 기독교 정신은 상실한지 이미 오래됐습니다. 미국을 세운 국부들이 Deism을 추구했습니다. Deism (이신론)은 진정한 기독교 정신이 아닙니다. 미국은 다양한 이민자들의 신앙이 뒤섞여 기독교 정신이 아주 혼란스럽게 나타나는 국가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고르반에 대한 유대인들의 악용을 공격하십니다. 종교가 문화로 정착되는 전형적 형태입니다. 부모를 돌보지 아니하려고 자신의 재산을 빼돌리는 제도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부모를 돌보지 않는 문화, 사회, 종교 제도를 비난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하나님의 경계선상에서 서있습니다. 경계선상은 언제나 불안한 사람들입니다. 그 어느 중심에도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유대인의 종교적 열심, 메노나이트와 같이 세상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반대로 진보적이고, 자유적으로 세상에 속해서 기독교의 정신으로 윤리와 도덕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발전은 그 사회의 가운데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변두리 Marginalized에 의하여 일어납니다. 세상의 주체는 변두리입니다. 창조와 개혁은 변두리의 권한이고 특징입니다. 사회적 가운데는 현 상황을 보수 유지하려고 하기에 창조와 개혁을 거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변두리이고, 당시의 제사장, 바리세인들은 사회 중심입니다. 로마시대에 교회는 사회적 변두리이고 교회를 박해한 로마 정부는 당시 세상의 중심입니다. 기독교는 변두리에서 중심을 혁명적으로 넘어뜨린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이 땅의 변두리로 오셨습니다. 우리들은 이민자로 이 사회의 약자이며 변두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문화적으로 만드는 것을 거부해야합니다. 한국의 교회와 신자들은 신앙이 문화화 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합니다. 그 결과 오늘 날 기독교는 사회적 지탄을 받습니다.

우리들이 신자답게 산다는 것은 오늘의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며 내 자신이 개혁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갈 때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의 중심을 변화시키고 그 중심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즉시 중심에서 변두리로 내려와야 합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