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8장 21-35 (형제에 대한 용서와 징계)

본문은 형제에 대한 예화입니다. 예수님은 형제 용서에 대한 결론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v.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우리들이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예화를 무조건의 용서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화를 잘 보시면 회개를 전제로 하는 용서입니다.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오늘 날의 1억불 정도입니다. 주인은 종에게 빚진 자신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빚 갚으라 합니다. 빚을 지면 노예로 팔렸습니다. 죄인이 되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죽이기도 했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1억불을 갚을 테니 엎드리어 참아 달라고 합니다. 종은 1 억불의 가치를 모르기에 빚을 갚겠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일억을 불을 갚을 수 있습니까?  당시의 빚은 죄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그는 자신의 죄의 크기와 깊이를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갚겠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기에 회개 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면 죄를 해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죄를 해결했기에 의인이 됩니다. 죄를 해결하지 못한, 세리와 창기와 빚진 자들은 죄인입니다.  그들은 성전 앞에서 가슴을 치며 회개 합니다.  용서 받는 제사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죄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바울의 말대로 율법은 우리의 죄를 나타낼 뿐입니다.

주인은 종을 용서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그럼으로 은혜를 받은 자는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합니다.  자신의 만달란트를 용서 받았기에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다른 사람을 용서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가 회개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절대로 용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자는 자신의 은혜를 알지 못하기에 다른 사람을 무시합니다.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신학적 Frame이지만  오늘 날 교회에서 강조되지 않습니다.

만달란트 빚진자가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납니다. 백 데나리온은 오늘 날의 만불입니다. 동료의 Hella 의미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동료를 Shen-dulos라고 합니다.  종을 Hella로 둘로스라고 합니다. 둘로스 앞에 접두사가 있습니다. Shen입니다. 가깝다, 동참하다, 같은 위치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친구와 같은 종입니다. 형제와 같은 종입니다. 첫 번째 주인과 종의 관계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는 형제와 같은 동료입니다. 친구입니다. 영어번역은 Fellow servant입니다. 동등한 관계임을 나타냅니다.

동등하지만, 빚진 자는 자신의 형제에게, 친구에게 , 드려 간구합니다. 간구하다는 // Para-klel입니다. 소리치며 애원합니다. 성경에서 주님을 부르는 소리, 기도하는 소리로 종종 사용됩니다.

그는 자신의 빚을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갚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또한 만불은 얼마든지 갚을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용서 받은 자가 친구를, 형제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아니한 자가 회개한자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만달란트 빚진자는 백 데나리온 빚진자를 용서해야합니다.  예수님은 회개한 자를 용서하지 아니한 회개하지 않은 자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에 하나님 말씀의 정교함이 있습니다.  우리의 착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예수님으로 부터 용서 받은 우리는 회개하는 형제는 100% 용서해야합니다.

회개는 용서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만달란트 빚진 자와 같이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는 우리들이 용서 하고 싶어도 용서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고전 5:11-13)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v.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v.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개혁교회가 교회되는 3가지 신학적 증표가 있습니다. 첫 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읽혀지고 선포됩니다. 둘째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그리고 3번째는 권징입니다. Discipline입니다. 법에 따르는 징계입니다. 문제는 오늘 날의 교회는 3번째를 하지 않습니다.

형제와 원수를 구별하지 못하기에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것을 사랑으로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 사랑에는 회개하지 아니하는 형제에 대한 징계와 벌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한 형제는 용서와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교회가 교회 답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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