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장 23-27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과 보이는 사람의 손)

우리는 물질에 대해 매우 예민합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계를 세운 아담 스미스 (Adam Smith)는 그의 국부론에서 인간의 탐욕을 지적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물질에 대한 욕심은 “보이지 않는 손”이 제한시키거나 통제해야 한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수많은 해석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타나지 아니하면 자본주의는 최악의 경제제도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보이지 않는 손”이 나타나면 자본주의는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경제제도입니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손”의 통치를 인정하면 물질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국부론의 중요 내용입니다.

예수님에게 부자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베다니의 나사로,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도 부자였습니다. 그들은 권력과 힘을 가진 부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세리의 친구들입니다. 당시의 세리는 탐욕의 부자들이였습니다. 예수님은 탐욕의 부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즐겼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친구였다고 하십니다.

성경의 부자는 돈이 많고 적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돈을 의지하면 부자입니다. 마음이 부자입니다. 돈이 많지만 돈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마음이 가난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돈의 많고 적음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살아갈 것을 원하십니다.

(신명기 24:18-2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v.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v.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v.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v.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하나님은 내가 너희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지 아니했다면 너의 밭 너의 감람나무 너의 포도밭은 너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구원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하십니다. 만약에 내가 너를 구원하지 않았으면 너는 애굽에서 가난한 노예로 죽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부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점은 너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너의 소유가 나의 것이기에 이웃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의 부자가 아니라 정신의 부자가 될 것을 요구하십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라고 하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벌을 주십니다.

(신 8:17-20)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v.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v.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v.20)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성경은 하나님을 우리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인정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사람을 (v.24)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습니다. (v.25) 제자들이 놀라면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제자들은 부자가 물질적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신들이 이미 부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v.26)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v.30)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하십니다.

돈의 역사를 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은 자본주의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거부합니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극도로 타락합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자본주의로 극심한 빈부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이에 반발하는 칼 마르크스 (Karl Marx)는 자본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합니다.

그는 노동자가 경제의 주체가 되어야 하기에 자본가, 생산자를 타파하는 무산계급을 주장합니다. 노동자가 경제의 주체입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을 거부합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해석은 오늘 날도 난무합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에 “하나님의 손”으로 봅니다.

공산주의는 사람을 위한 경제체계입니다. 논리적으로 아주 훌륭합니다. 그러나 레닌과 스탈린에 의하여 악용됩니다. 노동자가 자본가에 대한 경제적 투쟁으로 경제 이익을 창출합니다. 자본가의 탐욕의 손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돌려 받아야 합니다. 그는 경제적 혁명은 정치적 사회적 혁명으로 봅니다.  그에게 ‘보이지 않는 손”은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최악의 경제체제로 100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부자가 되는 일은 중요합니다. 가난에서 벗어나서 행복과 안전을 추구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물질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우리의 물질을 우리의 손을 통해서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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