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장 12-17 (진짜 장사꾼과 가짜 장사꾼-2)

어제 성전의 장사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장 외부지역에 해당하는 이방인의 뜰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 성전은 유대인과 이방인, 남성과 여성으로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성전을 이렇게 구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가장 나중에 세워진 헤롯의 성전에만 이방인의 뜰이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신명기와 같은 말씀에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유대인으로 절름발이, 소경, 신체불구자들 고자는 제사장도 될 수 없고 제사도 드리지 못합니다.

유대인이지만 이방인과 동일한 취급을 받아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사 56:3-8)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v.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v.5)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v.6)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v.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메시아가 오시면 하나님은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기 위하여 이방인과 고자를 구원하시겠다고 합니다. 고자는 신명기의 신체불구자를 대표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 할 때에, 이방인과 고자를 성전 출입을 허가하지만, 유대인의 여자의 뜰, 유대인 남자의 뜰, 제사장의 뜰에 오면 죽음을 당한다고 경고문을 써놨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지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으로 유대인들은 절대로 메시아를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성전이 우상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유대인은 이방인과 고자와 똑같은 사람이 된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 설계에서 나타납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성전이 철저하게 파괴 될 것임을 예고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메시아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자신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지 못합니다. 그럼으로 이방인의 뜰에 가짜 장사꾼들이 판을 칩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도 나타납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만만이 기도하는 집이 아닙니다.  고자와 이방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입니다.

첫 번째는 교회의 교인들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돈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당당하게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교회에 돈의 우상 맘몬이 들어와 있습니다.  교인이나 목사나 장사를 합니다.

두 번째는 한국 교회는 교회의 역사적 과오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에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가장 공격적 집단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 약자와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복음 전도라는 목적을 갖습니다.  왼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게 합니다. 이러한 태도로 우리는 약자의 구제를 통해서 전도와 선교의 장사하고 있습니다. 조건부 장사입니다.  이것은 가짜 장사꾼의 태도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 진리를 확신하면 세상의 다른 종교를 공격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절대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으기에 타 종교를 공격해서 우리의 진리성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진리가 상대적이라고 인정하는 최악의 하수입니다. 본전마저 까먹는 장사를 합니다.

네 번째는 한국 교회는 신학교가 교회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신학교를 인도합니다. 한국 교회의 신학은 무식한 대형교회의 몇 몇 목사에 의하여 좌지우지됩니다. 독일에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신학자들이 신학교에서 대형교회 목사의 신학수준인 5-60년대 신학을 가르칩니다. 대형교회의 목사가 신학교의 이사나 총장직을 맡기에 목사의 신학적 노선이 일치하지 않으면 임용이 되지 못합니다.

신학교는 학교입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신학교는 수많은 지식과 논쟁을 거쳐서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를 변증 하도록 교육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변증이 없으면, 신학적 토론, 즉 철학적 구성력을 갖지 못하면 목사는 믿으라는 말만하거나, 교인들을 달래주는 설교나 축복하는 설교를 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엄청난 보화를 무식하고 무지한 돼지들이 마구 사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거짓의 장사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거짓의 장사꾼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십니다.

한국에 귀한 목사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의 채찍에 맞고 쫓겨 날까봐 성전 구석에서 오늘도 벌벌 떨고 있습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