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 15-22절 (일반은총과 특별은총)

본문은 예수님을 시험에 빠지게 하려고 세금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당시의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정당성을 질문합니다.

당시 열심당이나, 바리세인들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하나님에 대한 배신으로 이해했습니다. 반대로 사두개인, 헤롯당원들은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정당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하시거나 내겠다고 하시면 어느 한 쪽에서 비난과 공격을 당합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십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중요한 신학적 변경은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에 대한 이해입니다. 종교 개혁이전에는 스콜라 철학의 영향으로 일반은총은 특별은총에 비해서 하등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은 동등하게 취급을 합니다. 우리는 특별은총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에서 많은 오해를 합니다. 특별과 일반은 동등한 내용입니다. 다만 특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의 입장에서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특별한 은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전혀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반적 은총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일반적 은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일반적 은총은 자연의 질서와, 군대와 경찰, 정치, 지식과 과학과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로 이용하고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자연보호, 환경을 보호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반적 은총이 없으면 생존하지 못합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천하게 여기고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한국교회는 아직도 종교개혁이전의 신학에 젖어있습니다. 이것은 카톨릭적 사상에 젖어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은총이 더 높고 일반은총은 낮은 것으로 계급적 판단을 합니다.

종교개혁은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동등화를 이루어 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입니다.  이러한 신학을 근거하여 만인제사장이 나타납니다. 목사와 같은 성직이나 우리들이 생업을 위하여 갖고 있는 직업이 동일한 하나님의 부르심, Calling from God입니다. 즉 Vocation 소명과 사명이 됩니다.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는 일반은총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는 특별은총입니다.  당시에 로마는 인두세를 바치지 않으면 로마는 그 사람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너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일반적 은총에 최선을 다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일반적 은총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귀하게 여기는 방법은 일반적 은총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때에 귀하게 나타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이 하나님의 일반적 은총이지만 동일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One Reply to “마태복음 22장 15-22절 (일반은총과 특별은총)”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