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장 13-15 (종교와 신앙 그리고 신학의 차이)

종교는 해당 종교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면 선과 진리이고, 그 종교가 요구하대로 하지 못하면 악과 거짓이 됩니다. 종교는 그 종교가 요구하는 행위의 결과로 Right and Wrong, 옳고 그름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종교를 원리주의 또는 근본주의라고 합니다.

기독교도 종교가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정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부당한 사람이 됩니다. 죄인이 됩니다. 그럼으로 그들은 율법을 만들어 종교적 행위로 자신들의 신앙의 정당성을 증명합니다. 율법에 맞지 아니하면 죄인이 됩니다.

(v.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하십니다.

오늘 날 많은 신자들이 종교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과 못 사는 것으로 자신과 이웃을 판단합니다. 그 결과는, 죄인과 의인을 만듭니다. 종교적 행위, 기도 예배, 봉사 헌신, 선교는 우리의 신앙을 형성하는 중요한 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에서 신앙으로 발전해야합니다.

신앙은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면 모든 일들이 옳고 그른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종교는 흑백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흑과 백이 아니라 회색지대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만 선과 악의 구별이 안 됩니다. 기도하지만, 예배 드리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과 우리들이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보다 낫습니다.  승리보다 패배가 많이 나타납니다.

실화입니다. 길에서 두 사람이 피가 터지게 싸웁니다. 싸움을 본 사람 중의 하나가 Police에게 전화로 신고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옆의 사람이 전화를 못하게 합니다. 만약에 전화해서 Police가 오면 저 두 사람 중의 하나는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더욱 더 불행해지고, 그 일로 가족에게 고통을 줄 것이다. 차라리 저렇게 둘이 싸워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저들에게 더 낳은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친구가 이렇게 말을 덧 붙입니다.  만약에 저들이 Police에게 체포되면 너는 증인으로 경찰에게 찾아가야하고 심지어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해야한다. 그래도 경찰에 신고하겠는가? 그는 경찰 신고를 포기합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면 많은 회색지대가 나타납니다. 선과 악의 구분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신앙은 이러한 고민을 줍니다.

신앙은 두 사람이 피가 터지게 싸우는 것을 보면서, Police에게 전화를 하는가 못하는 가의 상황을 주게 됩니다. 선과 악의 구분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판단에 상황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해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인본주의적 신앙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됩니다.

신앙은 어떠한 선택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내가 선택한 것에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에게 책임을 미루지 않습니다. 비록 나의 선택이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하면 나의 십자가가 나타납니다. 고민과 아픔이 나타납니다. 나의 책임과 의무가 나타납니다. 얼마나 정직하게 신실하게 살 것인가 나타납니다.

신앙은 피터지게 싸우는 것을 보고, Police에게 전화를 걸어도 나의 십자가 나타납니다. Police에게 전화를 걸지 아니해도 나의 십자가 나타납니다. 신앙의 종교와 같이 옮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무능과 죄악이 나타납니다.  신앙은 좋은 결과이든 나쁜 결과이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이중성을 갖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렇게 신앙 생활하면 신학이 나타납니다. 기독교도 신학이 상실되면 미신화 됩니다. 신앙으로 살면 신앙고백을 만들어냅니다. 신앙 고백은 우리의 현실과 상황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신학은 주어진 상황을 극복합니다.

신학적 신앙고백은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제시합니다. 하나님 약속을 믿게 합니다. 신앙고백은 종교의 위험성에 벗어나게 하고 신앙으로 사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격려와 위로를 알게 합니다. 신앙 고백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종교에서 신앙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신앙으로 살면 내 자신의 신학을 갖게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나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신학을 갖는 사람은 자신의 현실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 가를 알게 됩니다. 신학은 상대적 선과 악이 아닌 절대적 선과 악을 구분하고,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을 대치시키지 않습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한국교회는 신학이 없기에 신앙이 실종되고 종교적으로 행동합니다. 그 결과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이 이 세상에서 짐스러운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종교에서 신앙으로 그리고 신학적 고백을 하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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